2024년 05월 17일 금요일

  • 서울 20℃

  • 인천 21℃

  • 백령 17℃

  • 춘천 18℃

  • 강릉 22℃

  • 청주 21℃

  • 수원 21℃

  • 안동 19℃

  • 울릉도 15℃

  • 독도 15℃

  • 대전 22℃

  • 전주 24℃

  • 광주 23℃

  • 목포 22℃

  • 여수 22℃

  • 대구 24℃

  • 울산 23℃

  • 창원 25℃

  • 부산 24℃

  • 제주 21℃

두산그룹 흑역사···‘박범훈 게이트’로 한페이지 추가될까?

두산그룹 흑역사···‘박범훈 게이트’로 한페이지 추가될까?

등록 2015.04.03 15:50

강길홍

  기자

‘낙동강 페놀 방류’와 ‘형제의 난’ 사건도 아직 씻기지 않은 상처중앙대 의혹 확인될 경우 그룹 뒤흔들 세 번째 사건으로 번질듯

두산그룹 흑역사···‘박범훈 게이트’로 한페이지 추가될까? 기사의 사진


검찰이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비리와 관련해 수사범위를 중앙대에서 두산그룹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산그룹의 흑역사가 재조명받고 있다.

3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검찰은 박 전 수석과 두산그룹이 중앙대와 관련해 부적절한 거래를 한 정확을 포착하고 수사범위를 두산그룹 수뇌부까지 겨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두산중공업 회장과 중앙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용성 회장이 수사의 종착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두산그룹을 또한번 파국으로 몰아넣게 될 지 주목된다.

◇국내 최고(最古) 기업답계 다사다난=지난 1896년에 창업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은 국내 최고(最古)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기업의 역사는 다사다난했다.

낙동강 페놀 사태는 두산그룹의 이미지를 최악으로 떨어트린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는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전자가 1990년 10월부터 4개월간 페놀이 함유된 폐수 325톤을 낙동강에 무단방류한 사건이다.

당시 페놀 폐수가 방류된 낙동강은 영남권의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대 가정집마다 수돗물에서 나는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빗발쳤고 환경부가 정밀조사에 들어가면서 두산전자의 악행이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으로 당시 두산그룹을 이끌고 있던 박용곤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사람이 식수로 사용하는 물에 거리낌 없이 폐수를 방류한 두산은 부도덕한 대기업의 대명사로 낙인 찍혔다.

페놀 사건으로 당시 두산의 주력 사업체 가운데 하나였던 OB맥주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결국 수십년간 지켜왔던 맥주업계 왕좌를 조선맥주의 하이트에게 내주고 말았다.

악몽 같은 시기를 보내던 두산그룹은 OB맥주를 매각하는 극약처방을 내렸고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사업구조를 환골탈태했다. 소비재 중심에서 중장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하면서 두산그룹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박용곤 명예회장이 물러나면서 정수창 전 회장에게 맡겼던 그룹의 총수 자리도 고 박용오 전 회장에게 넘어오면서 그룹의 경영을 다시 오너가가 책임지게 됐다.

◇파국으로 끝난 형제들의 ‘아름다운 동행’=두산그룹의 재도약은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 박용만 회장 세 형제가 똘똘 뭉쳐 형제경영에 나선 것이 원동력이 됐다.

박용오 전 회장이 그룹의 총수를 맡았고 박용성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을 맡으며 측면지원했다. 박용만 회장은 한국중공업 인수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실무를 책임졌다.

특히 박용성 회장은 정부는 물론 재벌들에 대해서도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존경받는 재계 인물로 손꼽히기도 했다.

두산그룹이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남다른 가족애로 이겨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계의 칭송을 받던 형제경영 신화는 ‘검찰 투서’ ‘가문 퇴출’이라는 험악한 말이 등장하는 ‘형제의 난’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형제의 난은 페놀 사태 사건에 이어 두산그룹을 또한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트린 사건이다. 박승직 창업주에 이어 두산그룹의 경영권은 2세인 고 박두병 회장에게 넘어갔고 이후 3세인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과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이 차례로 맡았다.

2005년 7월 박용오 전 회장에 이어 3남인 박용성 회장이 총수 자리를 물려받았다. 당시 두산그룹은 박용오 전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박용성 회장이 새로운 총수로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경영권 이양 결정은 박용곤 명예회장이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용오 전 회장이 이에 반기를 들면서 형제의 난이 시작됐다.

박용오 전 회장은 일방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자 자신의 동생들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회장이 20년 동안 비자금 1700억원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고발하고 기자회견까지 자처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박용오 전 회장은 “동생들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사적으로 유용하고 해외 밀반출을 해왔다”며 “이 같은 사실이 나에게 적발되자 일방적으로 나를 명예회장이라고 발표하며 밀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산그룹 측은 박용오 전 회장이 형제경영의 전통을 깨고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을 자신의 가족 소유로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일어난 사태라고 주장했다. 결국 가족간의 재산분쟁이 형제의 난으로 번진 것이다.

두산가는 형제들을 검찰에 고발한 박용오 전 회장을 그룹 경영에서 아예 손을 떼게 한 것은 물론 가문에서도 제명키로 하면서 가족간 불화가 극에 달했다.

박용오 회장에 이어 두산그룹 총수로 등극했던 박용성 회장도 검찰이 두산산업개발 본사 건물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자 취임 5개월 만에 회장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용만 회장 역시 경영일선에서 동반 퇴진하게 됐다.

이듬해 박용성 회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의 형을 선고받았고 박용만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의 형을 받았다. 이후 2007년 2월 특별사면된 박용성·박용만 회장은 곧바로 경영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룹 총수로 전면에 나서기에는 두사람 모두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두산가는 과거 페놀방류 사건 때는 전문경영인을 총수로 영입했던 것과 달리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4남 박용현 서울대 이사장을 두산그룹의 총수로 내세웠다.

의사 출신으로 서울대병원장 등을 역임했던 박용현 이사장은 가문의 위가 상황 속에서 불가피하게 구원투수로 올라 안정화에 중점을 두고 두산 그룹을 이끌었다. 이후 2012년 동생 박용만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주고 학계로 돌아갔다.

형제의 난 결말은 비극적이다. 가문에서 퇴출된 후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노리던 박용오 전 회장은 경영 악화에 따른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2009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형제의 난 당시 두산가 3세들의 학벌도 화제가 됐다. 박용오 전 회장은 경기고를 나와 뉴욕대에 입학했다. 이와 달리 그의 동생들인 박용성·박용현·박용만 세 형제는 모두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이른바 ‘KS’ 출신이다.

◇중앙대에서 재기 꿈꾸던 박용성 회장=두산 오너 3세 가운데 독립해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는 막내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을 제외하면 5명이 모두 그룹의 총수자리를 경험했다.

이 가운데 박용성 회장의 재임기간이 가장 짧다. 다만 그는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중앙대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대와 관련한 의혹이 확산되면서 박용성 회장은 다시 한번 치명타를 입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형제의 난의 원흉이 됐던 두산건설(구 두산산업개발)이 이번에도 사건의 핵심이 되고 있다.

건설경기 악화로 건설사들의 부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두산건설과 관련해서도 숱한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다.

중앙대도 두산건설의 실적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두산건설은 중앙대에서 2010년 완공한 기숙사(278억원)를 비롯해 대학병원(145억원), R&D센터(421억원), 100주년기념관(999억원) 등의 공사를 맡아 2457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반면 중앙대는 새로운 건물을 잇달아 건설하면서 2009년 67억여원 수준이던 고정부채가 지난해 말 10배가량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앙대는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학생 등록금 일부를 사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앙대 이사장인 박용성 회장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대 이사장이기도 한 박용성 회장은 두산중공업의 경영도 맡고 있는데,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의 지분 8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범훈 전 수석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검찰이 두산그룹으로 수사범위를 확대할 경우 중앙대와 두산건설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박용성 회장이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는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그룹에게 폐놀 사태와 형제의 난 사건에 이어 또한번 그룹을 혼란의 사태로 몰아넣을 수 있는 일대사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길홍 기자 slize@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