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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등록 :
2019-11-14 12:29

LG화학 “SK이노베이션이 증거인멸”…ITC에 조기 패소 등 제재 요청

“광범위한 증거인멸, 법정모독 행위 드러나”
ITC에 ‘SKI 조기 패소판결’ 등 제재 요청해
LG화학 소송 제기 후 수차례 자료 삭제 지시
영업비밀침해 소송 관련 3만 4천개 증거 인멸

LG화학이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 중인 ‘영업비밀침해’ 소송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이 자료 삭제 등 증거 인멸한 정황을 포착해 법원에 제재를 요청했다.

지난 4월 29일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ITC에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로 다음날에도 이메일을 통해 자료 삭제를 지시하는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지속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14일 LG화학은 ITC에서 진행 중인 ‘영업비밀침해’ 소송의 ‘증거개시(Discovery)’ 과정에서 드러난 SK이노베이션의 광범위한 증거인멸과 법정모독 행위 등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판결’ 등 강도 높은 제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LG화학이 제출한 67페이지 분량의 요청서와 94개 증거목록이 지난 13일(현지시각) ITC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LG화학이 ITC에 제출한 법적 제재 요청문서 첫 페이지.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증거보존 의무’를 무시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증거인멸 행위와 ITC의 포렌식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법정모독’행위를 근거로 했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의 ‘패소 판결’을 조기에 내려주거나 SK이노베이션이 LG 화학의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생산, 테스트, 수주, 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했다는 사실 등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원고가 제기한 조기 패소 판결 요청이 받아들여지게 되면 ‘예비결정’ 단계까지 진행될 것 없이 피고에게 패소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

이후 ITC 위원회에서 ‘최종결정’을 내리면 원고 청구에 기초해 관련 제품에 대한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지난 4월 29일 소송제기 직후는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도 전사차원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증거인멸 행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LG화학은 ITC 영업비밀침해 제소에 앞서 2017년 10월23일과 2019년 4월8일 두 차례 SK이노베이션측에 내용증명 공문을 통해 ‘영업비밀, 기술정보 등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고 ‘영업비밀 침해 사실이 발견되거나 영업비밀 유출 위험이 있는 경우 법적 조치를 고려할 것’을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4월 8일 내용증명 공문을 발송한 당일 SK이노베이션은 7개 계열사 프로젝트 리더들에게 자료 삭제와 관련된 메모를 보낸 정황이 발견됐다고 LG화학은 설명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4월 12일 사내 75개 관련조직에 삭제지시서와 함께 LG 화학 관련 파일과 메일을 목록화한 엑셀시트 75개를 첨부하며 해당 문서를 삭제하라는 메일을 발송했다.

LG화학에 따르면 75개 엑셀시트 중에서 SK이노베이션이 8월 21일 제출한 문서 중 휴지통에 있던 ‘SK00066125’ 엑셀시트 한 개에는 980개 파일과 메일이 있었으며 10월 21일에서야 모든 존재가 밝혀진 74개 엑셀시트에는 3만 3천개에 달하는 파일과 메일 목록이 삭제를 위해 정리돼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의 자료삭제 지시 이메일.

ITC는 소송 당사자가 증거 자료 제출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누락시키는 행위가 있을 시 강한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실제 재판 과정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제출한 ‘SK00066125’ 엑셀시트가 삭제돼 휴지통에 있던 파일이며 이 시트 내에 정리된 980개 파일 및 메일이 소송과 관련이 있는데도 단 한번도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해 ITC에 포렌식을 요청했다.

이에 ITC는 지난달 3일 “980개 문서에서 LG화학 소유의 정보가 발견될 구체적인 증거가 존재한다. LG화학 및 소송과 관련 있는 모든 정보를 찾아서 복구하라”며 이례적으로 포렌식을 명령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ITC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980개 문서가 정리돼 있는 ‘SK00066125’ 한 개의 엑셀시트만 조사했다.

나머지 74개 엑셀시트에 대해서는 ITC 및 LG화학 모르게 9월 말부터 별도의 포렌식 전문가를 고용해 은밀하게 자체 포렌식을 진행 중이었다는 점이 10월 28일 SK이노베이션 직원을 대상으로 한 증인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고 LG화학은 전했다.

또한 요청서 내용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포렌식 진행 시 LG화학측 전문가도 한 명 참석해 관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ITC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조사과정에서 LG화학측 전문가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등 포렌식 명령 위반 행위를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으로부터 탈취한 영업비밀을 이메일 전송과 사내 컨퍼런스 등을 통해 관련 부서에 조직적으로 전파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이 ‘LG화학 연구소 경력사원 인터뷰 내용을 분석하고 요약한 정보에 따른 것’이라며 사내에 공유한 이메일에는 LG화학의 전극 개발과 생산 관련 상세 영업비밀 자료가 첨부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채용 이후에도 SK이노베이션은 전직자들을 통해 전지의 핵심 공정과 스펙에 관한 상세 내용 등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지속적으로 탈취해 조직 내 전파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과 LG화학 난징, 폴란드 공장의 코터(Coater) 스펙을 비교하고 해당 기술을 설명한 자료와 ▲57개의 LG화학 소유의(Proprietary) 레시피 및 명세서(Recipes and Specifications) 등을 사내 공유 했다는 내용이 발견됐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은 전직자들을 고용함으로써 발생 가능한 법적 리스크에 따라 마케팅, 생산 분야 인력은 ‘Low Risk’, 배터리 셀 연구개발 인력은 ‘Intermediate Risk’ 또는 ‘High Risk’로 분류해 관리한 내용도 발견됐다.

LG화학은 “공정한 소송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되는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및 법정모독 행위가 드러나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달했다고 판단해 강력한 법적 제재를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정혁 기자 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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