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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현 기자
등록 :
2015-08-18 17:57

수정 :
2015-08-19 07:39

7년 기다림에도 이루지 못한 꿈 ‘경복궁 옆 한옥호텔’

7성급 한옥형 부티크 호텔 꿈꿨지만 건축 관련 규제 막혀 좌절
조 회장, 제반 여건 해결 어려운 만큼 ‘적당한 타협’ 선택한 듯

한진그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7성급 한옥 호텔 건립 계획이 지방정부의 고집과 문화융성 정책 구현을 강조한 중앙정부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발 물러서게 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항공이 소유한 서울 송현동 경복궁 동십자각 인근의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에 오는 2017년까지(1단계 완공 기준) 지상 4~5층·지하 3층 규모의 새로운 문화창조융합벨트 거점을 짓겠다고 17일 밝혔다.

새롭게 마련되는 복합문화허브 ‘K-익스피어런스(가칭)’는 숙박시설이 없는 개방형 문화시설로 조성되며 인근의 인사동 고미술품거리 등과 연계해 우리의 전통문화와 첨단 기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문화 가치를 발견하는 현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사진=뉴스웨이DB

개발 계획이 공개되면서 이 부지에 대한 사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원래 이 땅의 첫 주인은 삼성생명이었다. 삼성생명은 지난 2000년 미국대사관 측에 약 1400억원을 지불하고 이 땅을 샀다. 삼성 측은 이 부지에 대형 미술관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건축허가 제한이 걸리면서 개발계획이 백지화됐다.

8년 후인 2008년 6월 대한항공은 이 자리에 초특급 호텔 중심의 문화복합단지를 세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대한항공이 땅 주인인 삼성생명에 29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지불한 점에서 이 부지에 대한 조 회장 측의 개발 의지가 매우 강력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조 회장의 ‘호텔 오너’ 꿈은 번번이 막혔다.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이하 정화구역)’이라는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학교 경계선에서부터 직선거리 200m에 이르는 지점까지는 정화구역으로 지정돼 호텔, 화장장, 유흥시설 등의 설치가 금지돼 있다.

대한항공이 이 부지에 호텔을 지으려면 해당 지역 교육청의 허가를 받고 지방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호텔 부지와 담장 하나를 마주하고 풍문여고와 덕성여중·고 등 학교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9년 9월 해당 부지 개발계획과 정화구역 해제 요청서류를 서울 중부교육청에 냈지만 6개월 뒤인 이듬해 3월 해제 불가 판정을 받았다.

대한항공은 인근에 고궁과 한옥마을이 있는 점을 감안해 전통 한옥 건축양식의 소규모 객실(약 150실)을 갖춘 호텔을 짓겠다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더불어 중부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다. 어떻게든 이 땅에 호텔을 짓겠다는 의지가 다시금 피력된 셈이었다.

2년여의 법정 공방에서 대한항공은 전패했다. 대한항공은 이 부지에 대한 개발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냈다. 조양호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호텔 건립을 위해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읍소하기까지 했다.

결국 중앙정부가 먼저 조 회장의 건의를 들어줬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3년 9월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 계획을 사실상 승인했다. 유해성이 없는 관광호텔은 법 개정 등을 통해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조 회장 앞을 막아섰다. 무역투자진흥회의 이후 일주일 뒤 박 시장은 “송현동 부지는 북촌한옥마을과 인사동 거리의 연계 지점인 만큼 시민 모두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익적 형태로 활용돼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하며 승인을 거부했다.

대한항공도 이에 질세라 “유해성이 전혀 없고 고궁의 분위기와 맞는 한옥형 부티크 호텔인 만큼 허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여론도 청소년의 학습권을 해치지 않는 이른바 ‘문화형 호텔’이라면 서울시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었다.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조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 자회사인 칼호텔네트워크의 대표이자 호텔 전문가였다. 그는 제주 KAL호텔과 하얏트 리젠시 인천 등 대한항공 계열 호텔을 무난히 운영해왔다. 경복궁 옆 부지 호텔이 지어지면 이곳의 운영도 그의 몫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조 전 부사장이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 일반적인 사회 활동마저도 힘든 신세가 됐다. 더불어 호텔 건립의 꿈도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그룹 내 호텔을 운영할 수 있는 다른 인물도 있었지만 최적임자였던 조 전 부사장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결국 호텔 건립의 꿈은 최초 건립 계획 공개 이후 7년여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문화복합단지를 짓는다는 계획은 유지됐지만 핵심이던 호텔 건립 계획은 사라졌다.

정부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 조 회장의 꿈을 이뤄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한진그룹에 대한 민심이 나쁘게 바뀌었고 최근 거세진 반재벌 정서를 감안할 때 호텔 건립까지 승인되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진그룹이 아직 호텔 건립을 전면 포기한 단계는 아니다. 나머지 단계에서 게스트하우스 등의 시설이 추가될 여지는 남아있다. 그러나 여러 상황을 비춰볼 때 현재로서는 호텔 승인이 쉽지 않은 만큼 문화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수준으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주변 여건의 문제로 호텔 건립이 어려워진 점은 아쉽다”면서도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과 당초 부지 개발 목적인 문화복합단지 조성의 목적이 비슷하게 부합하는 만큼 해당 단지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실의 벽이 두터운 만큼 조 회장 측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조 회장 측도 호텔 건립 계획 승인 이후의 역풍을 분명히 감안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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