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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 속 전도연,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인터뷰] ‘무뢰한’ 속 전도연,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등록 2015.06.01 07:30

김재범

  기자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온갖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표현할 수 있는 글자는 모두 동원하고 있다. 영화 ‘무뢰한’ 속 전도연에게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뭐 그렇다. 전도연이 출연한다. 이 한 문장, 단 8글자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사실이고 팩트다. 이미 ‘칸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그의 위치를 말해왔다. 그의 전작과 그리고 이어 나올 후작들을 모두 총집결해도 이번 ‘무뢰한’에 쏟아지는 찬사를 넘어설 수 있을까. 솔직히 쉽게 속단할 수 없다. ‘무뢰한’을 본다면 분명 더 그렇게 느끼고 박수를 치는 당신을 볼 수 있게 된다. 전도연은 배우다.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거짓을 꾸며내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전도연은 ‘무뢰한’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직접 만난 전도연은 분명 ‘무뢰한’ 속 김혜경의 침잠된 감정의 늪지대에서 아직도 빠져 나오지 못한 듯 보였다.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김혜경으로 살았었다. 분명 잠시 동안이지만.

‘무뢰한’이 제68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공식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 전도연은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번까지 4번째다. ‘밀양’으론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하녀’로 칸의 부름을 받았을 때는 ‘칸의 여왕’ 다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이번에는 공식 경쟁부문이지만 전도연에게는 좀 낯선 기운이 있었단다. 아니 당황해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고.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경쟁 부문은 두 번 경험이 있었잖아요. 칸 영화제의 관례 같은 게 상영 끝나고 기립 박수 쳐주는 거. 뭐 관례라고 생각을 했고, 오승욱 감독님과 남길씨가 옆에 있는데. 우린 상영이 끝나고 갑자기 박수도 없이 우르르 빠져나가더라구요. 두 분이 옆에서 사실 좀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되게 민망했죠. 우리 영화가 전달이 안됐나? 언어의 미묘한 차이가 있었나? 정말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어요.”

숙소에 돌아온 뒤에도 칸 영화제 첫 상영 후 이른바 ‘無박수’ 경험이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오해는 다음 날 바로 풀렸다. 칸 영화제 수석 부집행위원장인 크리스티앙 준과 만나 ‘무뢰한’ 첫 시사 후 발생한 ‘無박수’ 퇴장의 진실을 알았다며 웃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심야 상영이었고, 기자 분들도 빨리 숙소로 돌아가 주무셔야 하잖아요. 하하하. 크리스티앙과 만나 얘기를 나눴더니 ‘기자 분들도 퇴근을 한 것뿐이다’ ‘자러 가야 하지 않나’라며 웃더라구요. 그리고 기사를 보면 알 것이라고 말해 주더라구요. 실제로 기사를 보니 좋은 호평이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객석도 많이 찰 것이라 하고. 아휴, 다행이었죠.(웃음)”

‘무뢰한’에 대한 호평은 이미 쏟아지고 넘쳐흐르고 있다. 그 중심에는 단연코 전도연이 있다. 흡사 전도연의 노력이 ‘무뢰한’의 칸 진출을 도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럴 수 없다며 손사래다. 이미 4번이나 경험한 그곳의 냉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조차도 조마조마하고 가슴 떨리게 만든 칸에서의 이번 경험이 ‘무뢰한’ 속 김혜경을 처음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관심의 시작은 분명 전도연이 될 수 있지만, 전도연 때문에 무뢰한이 갔다는 것은 정말 ‘무례한’ 평가에요(웃음). 배우라면 이 영화에 안 빠질 수 없을 정도로 독특했어요. 그 점을 봐주신 것 아닐까 생각해요. 하드보일드란 다소 척박하고 메마른 감정의 표현법 속에서 멜로를 그린다? 되게 궁금했죠. 남자 영화 냄새가 나는데 사랑이 기본 베이스가 되는 감정 라인도 매력적으로 끌렸고. 정재곤(김남길)과 김혜경(전도연)의 독특한 러브라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정말 두 사람은 사랑을 했을까. 아니면 증오? 애증? 그 감정를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김혜경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렇게 확인하고 싶고, 달려든 전도연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연기에선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겪어본 전도연이다. 그런 전도연이 힘들고 고달프고 외롭고 괴로웠다고 한다. 제작보고회 당시 연출을 맡은 오승욱 감독의 전언이 화제였다. 전도연은 “배우들에게 이런 시나리오로 감정의 늪에 빠트리고 왜 당신은 바라보기만 하냐”고 했단다. 전도연은 이 질문에 쑥스러운 듯 웃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진짜 우리 감독님 못됐었어요(웃음). 그때는 그렇게 밖에 안보였어요. 어휴 진짜. 왜 그랬을까 내가 그때(웃음). 김혜경에게 내가 너무 동질되고 공감했었나 봐요. 처음 시나리오에서의 김혜경?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여자? 숫컷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여자? 그 바닥에서 머물고 싶은 여자? 그럼 어떤 느낌일까? 그런데 생각할수록 답이 안나오더라구요. 그냥 글이 아닌 느낌과 몸짓으로 김혜경을 만든 거 같아요. 내가 그 인물에 녹아버렸나봐요.”

그런 김혜경을 뒤흔든 남자가 등장했다. 평생 거짓을 진실로 믿고 살던 여자 ‘김혜경’에게 말이다. 전도연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곁에 머물고 있지만 숨 쉬는 것조차 거짓말인 박준길(박성웅)을 선택할까.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진실됨으로 다가오지만 무언가 가리고 숨긴 채 진실 같은 거짓을 말하는 정재곤(김남길)의 마음을 받아들일까.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사실 실제라면 전 두 사람 다 아니죠. 하하하. 그런 남자들이랑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사랑을 해. 김혜경은 평생을 수동적으로만 살아온 인물이에요. 끊임없이 그렇게 살아왔고, 그가 살아가는 세상에선 그게 정답이었죠. 그런 가운데 두 남자 가운데 한 사람? 박준길은 김혜경이 원할 때 옆에 없는 남자, 정재곤은 원할 때 옆에 있지만 정작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 난 두 사람 다 싫어요. 하하하. 내가 옆에서 날 지켜주는 남자가 좋죠. 지금 남편처럼? 하하하.”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김혜경이란 인물이 곧 전도연과 동음이의어 같은 느낌이 전해져 왔다. 전도연의 삶이 김혜경처럼 거칠고 바닥을 친 비루한 인생이란 얘기다 아니다. 감정의 깊이와 굴곡 그리고 변화 등 김혜경의 모두를 전도연은 아직도 놓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극심한 독감으로 살이 빠진 채 인터뷰 현장에 온 그는 열병을 앓은 듯한 김혜경의 모습과도 같았다. 흡사 영화 속 마지막 절망의 표정이 그의 분위기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그렇게 보이나요? 하하하. 감기 때문에 좀 많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살이 너무 빠져서 속상해요. 가뜩이나 말랐는데. 김혜경을 만들면서 감독님이 저한테 많이 여쭤보시더라구요. 감독님이 여자에 대해 정말 몰라요. 진짜 속상해(웃음). 김혜경을 에피소드를 통해 많이 그릴려고 하시던데, 저하고 상의를 많이 하셨어요. 김혜경은 그렇게 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순간순간의 감정으로 끌고 갔어요.”

오승욱 감독은 그를 가리켜 ‘시나리오 분석의 대가’라고 표현했다. 전도연 정도면 충분히 그럴만 한 칭찬이라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지문 하나로도 화면 전체를 그려낸다는 전도연의 심미안은 오승욱 감독의 칭찬만이 아니다. 그와 작업한 모든 감독들이 ‘단어 하나로도 화면을 채우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사실 전 오히려 감독님께 의지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너무 과찬이 지나치시죠(웃음). 감독님이 ‘무뢰한’ 속 김혜경을 전적으로 저에게 던져 주신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제가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게 절 끌고 가주셨어요. 감독님 아니었으면 전 주저앉았어요. 시나리오 분석력? 배우가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상상을 해요. 상상을 하다보면 그 인물이 다가오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런 스킬과 훈련이 잘 된 것 같아요.”

감정의 깊이와 흔들림이 크게 때문에 사실 이해하기도 쉽지는 않은 영화가 ‘무뢰한’이다. 김혜경과 박준길, 그리고 정재곤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멜로 라인의 끝은 무엇일까.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그 점을 감안하고 질문을 던졌다. 김혜경이 바랐던 사랑의 끝은 어떻게 될까. 전도연은 그 사랑의 끝을 납득한 것일까.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무뢰한’ 인터뷰 가운데 가장 난감한 질문인데요? 하하하. 글쎄요. 생존본능으로만 가득찬 세상이 ‘무뢰한’ 속 세상이라고 봐요. 그 세상은 평범하게 안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회 같아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들 믿는 것이겠죠. 약육강식의 법칙만 살아 숨쉬는 세상. 그 안에서 사랑을 찾는 김혜경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사람이 아닐까요. ‘무뢰한’의 세상은 삶과 죽음만 공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참 ‘무례’하죠. 그 세상.”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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