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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집으로 가는 길’ 정말 오래 걸리던데요”

[인터뷰]전도연 “‘집으로 가는 길’ 정말 오래 걸리던데요”

등록 2013.12.18 19:30

수정 2013.12.18 20:55

김재범

  기자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2013년이 불과 열흘 정도 남았다.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 진급반 대상자는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고 불멘 소리를 쏟을 시기다. 여러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외모가 경쟁력일 수밖에 없는 배우들, 특히 여배우들은 상당한 물질적 시간적 투자로 외모 가꾸기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탓을 하면서. 하지만 간혹 ‘동안’이란 신의 불공평한 장난질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겐 흘러가는 세월 탓을 하는 한 숨에 포기란 단어까지 더하는 마침표를 찍어 버린다. 최근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2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배우 전도연을 보고 있자니 세월이 비껴간 외모에 잠시 넋을 잃었다. 물론 배우에겐 외모보단 연기력이 중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전도연이라면 애기는 틀려진다. ‘칸의 여왕’ 아닌가. “여왕님 영광입니다”란 농담 섞인 인사에 전도연 특유의 웃음이 터지길 원했다. 그런데 왠걸. 은은하지만 장난끼 가득한 눈웃음으로 대신한다. 기대가 된다. 인터뷰 시간이.

최근 영화 개봉 전 만난 전도연은 차분해 보였다.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까르르’ 웃음소리에 담긴 유쾌함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그랬다. 며칠만 지나면 우리 나이로 마흔하고도 한 살에 접어든다. 0이란 숫자와 1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게 엄청나듯 전도연 역시 느낌이 다른 듯 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큰 의미가 있을까. 글쎄,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서글플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여배우에게 나이는 무섭다기 보단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어진다는 의미 아닐까. 물론 나이를 먹어도 정말 멋지고 훌륭한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윤여정 선생님을 보면 솔직히 빨리 선생님 나이가 되고 싶기도 하다.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배우인가.”

단발머리를 쓸어 올리는 얼굴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아직도 소녀의 앳된 그것이 보였다. 전도연은 민망한 듯 손부채를 날리며 “아유, 주름이 자글거려서”라며 작은 손으로 한쪽 얼굴을 가렸다. 참 작은 얼굴이다. 그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괴물 같은 연기력이 나올까.

‘집으로 가는 길’은 솔직히 전도연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걸출한 연기력과 연출력까지 겸비한 배우 출신 방은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연기력과 비주얼을 함께 갖춘 몇 안되는 배우 고수가 함께 하지만 본 사람들 대부분은 단연코 ‘전도연의 영화다’고 말 할 것이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솔직히 정연이란 인물에 대해 지금도 공감을 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못 하기도 한다. 배우들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 배역을 100% 이해 못하면 혼란스럽다. 나 역시 그랬다. 얘기 자체가 솔직히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런데 그 상황을 실제로 겪은 사람의 얘기다. 참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촬영을 하면서 정연의 심정을 조금씩 이해하고 찾아나갔다. 감독님도 그런 나를 기다려주셨다. 아마도 그 부분을 관객 분들이 잘 봐주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을 터. 특히 송정연의 감정이 요동치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의 촬영 분은 전도연의 감정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단다. 현지에서 3주간의 촬영 기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이 영화 속에선 2년으로 흘려야 했다. 극 전체에서 정연의 감정은 절대 튀면 안됐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정연의 절박함이 묻어나야 하는 연기가 필요했다. 전도연은 그 당시를 설명하며 “정말 너무 어려웠다”며 고개를 저었다. 칸 영화제 인정한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전도연이 어렵다고 한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집으로 가는 길’ 속에는 전도연의 말처럼 송정연의 튀지 않으면서도 튀어야 하는 일종의 아이러니가 곳곳에 담겨 있다. 스토리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의 애기를 하고 있으니 그 안에서 살아야 했던 전도연의 고충은 오죽했겠나. 특히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촬영한 교도소 촬영 분은 실제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 함께 찍었단다. 살인 마약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실제 범죄자들이었다. 26년 배우 생활 동안 첫 경험이자 색다른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무서웠다.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다. 덩치들도 정말 큰 분들이라 내게 달려들면 난 꼼짝 없이 큰일을 당하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분들은 너무 순진하고 순수한 분들 같았다. 촬영을 너무도 즐겼다. 아마도 무료한 수감 생활 속에서 우리 촬영이 일종의 놀이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던 시기는 따로 있었다. 영화 속 하이라이트인 법정 장면이다. 송정연의 감정이 폭발해 산화하듯 흩어지는 그림이 담겨 있다. 전도연의 연기 진수라고 꼽을 만한 명장면 중에 명장면이다. 이 장면을 찍고 전도연은 탈진해 쓰려졌단다.

“(법정 장면은) 2년이란 시간 동안 모든 감정을 거세당한 정연에게 마지막 자기 변론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생각을 해봤다. 진짜 정연이 그 순간 무슨 말을 할까. 잘못하다 2년이란 시간을 다시 그 악몽 속에서 보낼 수도 있을 텐데. ‘감정에 호소할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니 아닐 것 같았다. 아마도 단단해져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넘어선 정연의 모습. 억울한 상황 속에 빠트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법정 장면을 찍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감정이 격해졌는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어 화제를 돌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에필로그 장면 즉 프랑스 오를리 공항 촬영분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당시 고생담은 제작발표회, 언론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공개가 됐다. 많이 화가 나고 아쉬웠나 보다. 손 벽을 딱 치며 얘기를 시작했다.

“공항에서 분명히 허가를 받고 촬영을 했다.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데 자꾸 나가라고 하더라. 남은 분량은 도둑 촬영으로 겨우 끝냈다. 그런데 촬영이 끝난 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받게 2년 뒤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문화예술 공로 훈장 슈발리에) 생각이 나더라. 정말 아쉬운 게 그때 훈장 얘기를 좀 할 걸 그랬다.”

집으로에 대한 다양한 얘기는 전도연을 통해 끝도 없이 나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이면 다섯 살인 딸은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왜 사인을 해주는 지 왜 TV에 나오는지 이제 막 궁금증이 생겼단다. “엄마 왜 저 사람이 엄마한테 글을 써달라고 그래?”라며 동그란 눈으로 질문을 하는 딸을 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는 전도연이다. 그런 딸을 두고 멀리 저 멀리 집을 떠날 용기가 났을까.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정제되지 않은 얘기라고 할까. 어디에 포인트를 두는가에 따라서 정말 다른 얘기가 나올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실제 있었다고 하니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왜?’라는 의문이 생겼다. 아마도 그 의문과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날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트려 놓지 않았나 싶다.(웃음)”

인터뷰가 끝난 뒤 곧바로 ‘협녀 : 칼의 기억’ 촬영을 위해 대전으로 향해야 한다며 기지개를 켜는 전도연.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은 행복한 송정연의 모습이 배우로서 돌아온 전도연의 모습과 더해져 보인다. 팬들이 반갑고 전도연도 반가워하고 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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