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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패권국’ 美에 맞선 나라들···34년 전 日 참패 있었다

[환율전쟁]‘환율 패권국’ 美에 맞선 나라들···34년 전 日 참패 있었다

등록 2019.08.07 15:05

수정 2019.08.07 15:09

정백현

  기자

‘$1=7元 체제’ 붕괴···中 환율조작국 지정2차대전 승리 후 환율 패권국 차지한 미국美, 80년대 이후 환율 관련 국제분쟁 벌여1985년 美-日 분쟁 후 ‘플라자 합의’ 대표적일각서는 ‘플라자 합의 데자뷔’ 가능성 언급

무역 관세를 두고 충돌하던 미국과 중국이 이번에는 환율 조작 논란으로 거세게 부딪히면서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에 금융권이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종합무역법에 의거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4년 이후 25년 만이다.

미국 정부의 이같은 행동은 지난 4일(현지시간) 기준 위안/달러 환율이 1달러당 7위안선을 넘어선 이른바 포치(破七) 현상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1달러당 7위안선은 미국 금융시장이 느끼는 위안화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미국의 이와 같은 조치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중국 정부 차원에서 환율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미국 측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미국과 중국 간의 환율 전쟁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의 환율 전쟁의 정확한 내막과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과거에 벌어졌던 국가 간 환율 관련 분쟁 사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분쟁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고 분쟁 결과도 미국이 우세한 적이 많았다는 점이다.

‘환율 패권국’ 美에 맞선 나라들···34년 전 日 참패 있었다 기사의 사진

현대 금융시장에서 오늘날과 유사한 환율 제도가 정착한 것은 70여년 정도 된다. 2차 세계대전 종전기인 1944년 1월 연합국의 맹주였던 미국은 전후 금융질서 확립을 위해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에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미국 중심의 환율 질서가 잡힌 것이 이때부터다.

브레튼우즈 체제로 불리는 이 체제는 각국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금 태환(금을 보유한 중앙은행이 일정 금액의 정부지폐를 받으면 그 금액에 상당하는 금으로 맞바꾸는 제도)을 할 수 있던 것을 미국만 할 수 있도록 한 것에 있다.

즉, 달러만이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통화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이 이 때였고 미국 달러화가 세계 기본 통화(기축통화)로 자리 잡은 것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유산인 셈이다.

이후 미국이 은행국이 되고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대외용 자산으로 보유하며 미국은 다른 나라가 보유한 달러에 대해 금 태환을 보증하게 됐다. 각 나라는 자국통화의 환율을 금이나 1944년 7월 기준 수치로 표시했는데 이 당시 고정된 비율이 바로 금 1온스당 35달러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의 재정 지출과 금 보유량의 반비례가 극대화되는 1971년부터에 붕괴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미국은 다른 나라가 달러를 줘도 금을 쉽게 바꿔주지 못할 정도로 금 보유량이 줄었고 결국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는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하며 닉슨 쇼크를 불러오게 된다.

닉슨 쇼크 이후 달러 가치가 폭락했고 일본 엔화와 금값이 뛰기 시작했으며 이후 중동발 오일 쇼크로 이어진다. 이후 한동안 국제 통화 시장은 크고 작은 혼란을 겪지만 금본위제도 기반의 고정 환율제가 사라지고 변동 환율제가 완벽히 자리를 잡게 된다.

다만 변동 환율제는 통화 가치 불균형이라는 큰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나라 간 통화 가치가 같지 않다보니 특정 국가가 부정하게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게 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현재 갈등도 통화 가치의 불균형 탓에 벌어진 사례로 볼 수 있다.

문제는 1980년대 이후부터 미국이 자국 경제 지표의 회복을 위해 ‘눈엣가시’로 분류되는 나라를 상대로 관세와 환율을 무기처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85년 미국과 일본의 환율 분쟁과 그로 인해 탄생한 ‘플라자 합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 미국은 심각한 대일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 당시 1달러당 엔화 가치는 260엔에 이르렀다.

결국 미국은 일본에 통상 압력을 가했다. 당시 미국은 대일 적자 폭증의 배경으로 일본 제품의 저렴한 가격과 불공정한 엔/달러 환율에 있다며 엔/달러 환율을 150엔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5개국 재무장관이 모였고 달러화 가치를 낮추고자 각국 정부의 개입에 의해 환율을 조정하기로 하는 ‘플라자 합의’를 도출했다. 그 결과 엔화 강세가 시작됐고 달러 약세가 이어지며 미국 제조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회복된다.

합의 직후 일본은 “미국 경제가 일본 앞에 항복했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일본 기업들은 해외 부동산과 기업들을 연속으로 사들였으며 시중에는 돈이 넘치게 됐다.

그러나 몇 년 뒤 일본 중앙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폐기하고 금리를 올리자 부동산 가격과 주가에 끼었던 거품이 빠졌고 1990년대 초부터 ‘잃어버린 20년’으로 대표되는 장기 불황이 시작됐다. “미국을 이겼다”던 1985년의 일본의 호기는 결국 대형 참사로 돌아오고 말았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미국이 34년 전 일본과의 분쟁 사례를 거울삼아 ’제2의 플라자 합의’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무대에서 ‘타고난 협상가’로 꼽히는 만큼 중국을 또 다른 협상의 무대로 끌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1985년의 일본과 2019년의 중국은 교역 환경이나 주력 상품 등이 다르고 과거에 일본이 겪었던 경기 침체의 사례도 전해지는 만큼 중국이 미국의 전략대로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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