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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인 기자
등록 :
2017-04-27 11:01

수정 :
2017-08-29 11:02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최종건·최종현 - 선경 올 생각하지 마!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1953년 폐허의 직물공장에서 출발한 SK, 한국 산업사에 큰 획을 그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는데요. 재계에선 3살 터울인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 형제의 ‘우애’와 ‘조화’가 그 바탕에 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기업가 형제와는 사뭇 다른 형제애. 이는 두 사람이 경영 전선에서 하나의 가치를 계승‧공유했다는 사실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그 가치, 과연 무엇일까요?

◇ 최종건의 삼고초려

1953년 SK의 전신인 선경직물을 세운 최종건 창업회장. 기계엔 익숙했지만 직물에 들어갈 문양이나 도안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동대문 시장에서 평판을 얻고 있던 젊은 도안사 조용광을 만나게 되는데요.

‘문직기의 기계적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직물 동향에 밝아 소비자 기호를 담아내는 도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최 회장은 그에게 선경직물 도안사 자리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조용광은 여러 회사에서 1년 치 주문을 받아놨다며 거절을 표합니다. 이를 이해한 최 회장, 1년을 기다리겠다고 약속합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당시 업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현대판 ‘삼고초려’라 칭할 만합니다.

1년 후 선경직물에 입사한 조용광은 곧바로 공장장에 임명됩니다. 기다려준 것도 고마운데 파격 인사로 전폭적인 믿음까지 확보한 조용광. 그 덕분일까요? 조 공장장은 즉시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시장이 요구하지 않는다 해서 72인치짜리 대폭 문직기로 30인치 견직물만 짜는 건 비효율적이다. 60인치 대폭(大幅) 견직물을 생산, 과다한 재고를 줄여야 한다.’

조용광 공장장은 견직물은 소폭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취지를 납득한 최종건 회장도 흔쾌히 ‘OK’ 합니다. 1957년 여름 생산에 들어간 대폭 견직물은 그해 12월 재고가 바닥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둡니다.

직원에 대한 최종건 회장의 예의가 인재 등용에만 적용되진 않았습니다. 최 회장은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땀을 흘리는 경우가 많은 실천형 리더이기도 했습니다. 실제 기름때 낀 작업복 차림으로도 유명했지요.

동생인 최종현 선대회장의 합류는 1962년 이뤄집니다. 선경직물과 운명을 함께하자는 형의 제안에 응한 것. 형제는 임직원과 합심해 크레퐁, 앙고라, 깔깔이 등 히트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고도성장의 길을 엽니다.

하지만 ‘선경 쌍두마차’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최종건 회장이 1973년 48세를 일기로 타계했기 때문.

“형님이 살아 계실 때 이상(以上)으로 잘해서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게 형님의 유훈이라고 믿는다.” - 최종현 선대회장

◇ 최종현 “선경은 오지 마!”

1973년 선경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최종현 회장은 수직계열화로 경영의 시스템화를 추구합니다. 1975년엔 ‘선경연수원’을 세우는데요. 최종건 회장의 인재 사랑 정신을 체계적 전문가 양성 기관으로 업그레이드 구현한 셈.

인재를 향한 최종현 회장의 관심은 회사 경영 차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세계적 석학 키우기란 원대한 꿈을 가졌던 그는 이를 실천하고자 사재를 털어 1974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국가의 미래가 인재에 달려있다.’

한국교육재단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조건 없는 지원. 1년에 20~30여 학생의 해외 대학 박사 과정 일체를 지원하면서도 학업 전념 외엔 요구한 게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나라를 위한 인재 양성’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

‘장학퀴즈’ 후원을 40년 이상 해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청년들이 각 분야에 진출해 역량을 발휘하는 게 기업의 사회공헌이란 측면에서 볼 때 보람찬 일이라 판단한 것이지요.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졸업하고 선경 오면 안 돼, 오지 마! 더 좋은 데로 가. 좋은 머리를 갖고 나라를 위해 일해야지.” - 최종현 선대회장. 차인태 자서전 ‘흔적’ 中

기업 경영은 물론 국가의 미래도 염두에 뒀던 최종건‧최종현 회장의 인재 사랑. 그들에게 사람이란 어떤 열매를 맺을지 결정되지 않은,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품은 존재였습니다.

“나무를 심듯 인재를 심고, 인재를 심듯 나무를 심는다.” - 최종현 선대회장. 1972년 조림사업을 시작하며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무엇보다 어려운 게 바로 인간관계인데요. SK 선대회장들의 삶에서 조언을 구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성인 기자 s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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