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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현 기자
등록 :
2015-08-0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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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생존 창업주 멸시’…롯데, 왜 이러나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 대하는 태도 분쟁 격화 전후로 달라져
분쟁 전 “회사 움직이는 굳건한 CEO”서 분쟁 후 “총기 흐려진 노인” 취급
창업주 발언·행동은 회사 정통성과 직결…창업주 무시는 곧 기업 역사 否定

일본으로 떠났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7월 28일 오후 휠체어에 탄 채 김포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벌이는 가족 내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롯데의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하는 롯데그룹의 태도에 대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세계 기업 경영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던 ‘생존 창업주 멸시’가 그대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오르기 전까지 신 총괄회장에 대해 늘 ‘회사를 움직이게 하는 카리스마를 보유한 창업주’로 추켜세웠다. 모든 의사결정 권한은 신 총괄회장이 갖고 있으며 신 총괄회장이 관련 사안을 정확히 보고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7월 말부터 신 총괄회장과 그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자 롯데그룹의 태도가 바뀌었다.

경영 현안에 대한 보고를 정확히 받고 있다는 이전의 설명과 달리 “90대 고령인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거나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나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 다른 이들에 의해 신 총괄회장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해명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현재 실권자인 신동빈 회장의 이해관계에 맞춰서 롯데 창업주인 신 총괄회장을 제멋대로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의 이같은 반응에 대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제아무리 실권을 쥐고 있는 신동빈 회장의 안위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롯데를 키운 창업주를 고령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분석이다.

신 총괄회장이 지난 2일 “신동빈 회장을 용서할 수 없다”고 밝힌 영상 메시지도 이같은 롯데그룹의 태도 변화에 분노한 증거가 아니냐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은 경영권이나 유산 등을 쟁탈하기 위해 숱한 전쟁을 치러왔다.

특히 국내에서도 현대가와 두산가, 한진가, 삼성가, 효성가, 금호가, 한화가 등 여러 재벌 가문이 분쟁에 휘말리며 세인의 비난을 받았다.

이들 분쟁의 대부분은 형제간 싸움이었고 창업주이자 아버지가 싸움에 연루된 곳은 현대가와 효성가 정도뿐이다. 그마저도 아버지였던 고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주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한 발짝 뒤에서 아들들을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들 가문의 피비린내 가득한 싸움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 하나 있다. 아무리 싸우는 중이라 해도 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선대 회장에 대해서는 예의를 지켰고, 대부분 가문에서 일어난 형제간 싸움도 창업주의 타계 이후에 분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롯데의 경우는 신 총괄회장의 발언 이후 그에 대해 ‘사리분별이 제대로 안 되는 노인’과 비슷한 뉘앙스로 창업주를 대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나 생존한 창업주의 발언과 행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이를 ‘제 논에 물 대기(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업의 정통성과 역사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롯데 입장에서는 ‘인간의 도리와 역사를 모르는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가문 내 싸움 속에서도 창업주에 대한 예의를 지킨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사례를 롯데 가문이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 안팎에서는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고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비판을 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두 기업은 끝까지 창업주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다.

호암 타계 이후 뿔뿔이 흩어진 삼성, 신세계, CJ, 한솔 등 범삼성가 기업들은 지난 2010년 호암의 탄생 100주년을 맞았을 때 힘을 모아 호암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회장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와중에도 창업주 호암에 대한 업적을 기리는 일에는 의견을 달리 하지 않았다. 선영 추모행사는 따로 치르면서도 제사 때는 식구들이 모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범현대가 역시 올해 11월 아산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동안의 반목을 청산하고 가문이 한데 어울려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활약했던 아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에 서서히 나서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실권자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창업주의 발언과 행동은 그 기업의 뿌리가 되는 역사이자 철학과 연결된다”며 “실권자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상황이라고 해서 창업주의 존재마저 묵살한다면 추후 더 큰 불상사가 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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