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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책임경영 한다더니···사고 나면 법 허점 뒤로 숨는 오너들

부동산 건설사

책임경영 한다더니···사고 나면 법 허점 뒤로 숨는 오너들

등록 2022.10.28 15:14

수정 2022.10.28 18:33

장귀용

  기자

사고 발생하면 고용인 대표이사가 모든 책임 떠안아50대 건설사 중 17곳 오너가 非오너 대표이사 선임그룹사 소속 제외하면 대부분 이른바 '바지대표' 의혹

안찬규 SGC이테크건설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경기 안성시 KY로지스 저온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안찬규 SGC이테크건설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경기 안성시 KY로지스 저온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후 오너일가는 이면으로 더 숨어버렸고, 평직원 신화의 완성이라던 '대표이사'자리는 '바지사장'의 대명사가 돼버렸습니다."

올해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오히려 늘었다. 이런 가운데 건설사 중 상당수는 오너일가가 사실상 경영을 주도하고 있으면서도 전문경영체제 도입을 이유로 '비(非)오너가(家) 대표이사'를 내세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는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 통계를 분석한 결과, 3분기에 건설사고로 사망한 근로자는 총 61명이라고 26일 밝혔다. 이 가운데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50% 증가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됐지만, 사고 줄이기엔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 이후 사업주인 오너일가의 책임회피 행태가 더 심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중대재해를 일으킨 업체의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또는'이란 문구에 따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중 한 명만 처벌해도 된다. 경영책임자를 내세우기만 하면 사업주인 오너일가는 책임소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오너일가의 책임회피는 현실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경기남부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물류센터 건설현장에서 거푸집 붕괴로 3명의 사망사고를 낸 SGC이테크건설의 안찬규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혐의로 입건됐다. SGC이테크건설은 오너인 이복영 회장도 함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하지만 이복영 회장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23일 사고 현장에서 열린 사과문 발표 현장에도 안찬규 대표이사만 나섰다.

이달 실시한 국정감사에서도 오너 일가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철거현장과 아파트 신축공사현장 붕괴사고를 일으킨 HDC현대산업개발의 오너인 정몽규 회장은 정무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출장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정익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CSO(안전관리책임자)가 증인으로 나왔지만 "보상 문제에 관해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정익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교통부 국정감사 증인출석.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정익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교통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정익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교통부 국정감사 증인출석.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정익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교통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의 김상수 협회장도 자신의 업체 대표직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란 의혹을 받았다. 김 회장은 중대재해특별법 시행 전 본인의 회사인 한림건설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등기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협회장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건설협회의 정관까지 뜯어 고쳤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협회 회원자격을 가입업체의 '대표자'에서 '대표자 또는 등기이사 중 1인'으로 바꾼 것.

대한건설협회는 10대 건설사를 포함해 7000여개의 건설업체가 가입한 건설업계 최대 단체다. 대한건설협회장은 건설관련 17개 단체가 모인 대한건설총연합회의 회장직도 겸한다.

뉴스웨이 취재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50위 내 건설사 중 17곳이 오너일가가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면서도, 非오너가 대표를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사 소속으로 임명직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업체가 해당한다.

비오너 대표이사 체제는 그 형태도 다양하다. 오너일가의 대표이사와 비오너일가 대표이사가 공동대표를 맡거나, 오너일가는 사내이사직만 유지하면서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이 많았다.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고 오너일가에선 공식직함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런 모습은 그룹사 소속인 대형건설사보단 중견건설사에서 더 많이 보였다.

대구에 위치한 아파트건설현장.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장귀용 기자대구에 위치한 아파트건설현장. 기사내용과 무관. 사진=장귀용 기자

오너일가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면서 비오너가 출신 대표이사와 공동대표체계를 유지한 곳이 8곳으로 제일 많았다.

그룹사 소속 업체들은 오너 일가 중 특정인의 지배력이 강한 곳에서 공동대표 체제를 선택하고 있다. GS건설은 최대주주인 허창수 회장과 법률가 출신 임병용 부회장이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도 박지원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지만, 정연인 대표가 COO로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다. KCC건설은 정몽열 회장이 대표이사이자 오너이고, 2014년 취임한 윤희영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중견건설사는 SGC이테크건설처럼 전문경영인이나 안전관리책임자를 공동 대표이사로 앉혀놓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계룡건설은 전문경영인인 한승구 회장과 함께 2세인 이승찬 사장이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한신공영은 오너2세인 최문규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지난해 말에 선임된 선홍규 대표이사의 공동대표 체제다. 동원개발은 장복만 창업주가 대표이사 회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고, 올해 초 이성휘 사장을 안전관리책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화성산업은 3세인 이종원 회장 대표이사 체계에서 올해 초 최진엽 사장을 외부영입 해 공동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했다.

오너 일가가 대표이사를 맡지 않고 이면에서 사실상 경영에 참여하는 기업도 많다. 호반건설 2세인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 사장은 대표이사를 맡지 않고 사내이사로만 등록돼있다. 중흥건설은 정창선 중흥건설그룹 장남인 정원주 사장이 오너지만 백승권 대표이사가 책임을 안고 있다. 계열사인 중흥토건은 정원주 사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인데 대표이사는 이경호 전무가 맡고 있다. 아이에스동서도 2세인 권민석 사장이 2021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사내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다.

오너일가가 직함은 더 높은데도 대표이사를 맡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미건설도 2세인 이석준 부회장이 사업주도하고 있는데. 대표이사는 배영한 사장이 맡고 있다. 태영건설도 윤세영 창업주는 미등기 회장으로, 2세인 윤석민 회장은 사내이사만 맡고 있다. 대표이사는 이재규 부회장이 맡고 있다. 금강주택은 김충재 회장과 2세인 김태우 부회장이 실권을 쥐고 있지만 최상순 대표이사가 책임을 지는 구조다. 서희건설도 대내외의 모든 일을 이봉관 회장이 주도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론 김팔수, 김원철 대표이사 체계다.

전문경영인 체계를 도입하고 오너일가가 전면에서 물러난 업체도 있다. 제일건설은 2017년 박현만 대표이사를 선임한 뒤 유재훈 사장 등 오너일가가 전면에서 물러났다. 올해엔 김경수 대표를 안전보건최고책임자로 추가로 선임했다. 반도건설도 2020년부터 권홍사 회장이 일선의 직함을 대부분 내려놓고 전문경영체제 돌입했다.

반면 오너일가가 책임경영을 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양우건설은 2세인 고광정 대표와 작은 아버지 고문철 대표이사의 공동 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너일가의 책임 면피에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후 비오너가 대표이사는 언제든 오너일가를 대신해 책임을 떠안고 잘릴 수 있는 '바지사장'이란 인식이 강해졌다"면서 "최근 건설업계에선 대표이사 승진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마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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