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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ESG 투자로 자본시장의 판을 바꾸자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

ESG 투자로 자본시장의 판을 바꾸자

등록 2022.03.22 07:45

수정 2022.05.26 07:17

ESG 투자로 자본시장의 판을 바꾸자 기사의 사진

경제는 실물시장과 금융시장으로 구별된다. 금융은 자본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의 중개 역할을 맡는다. 즉 금융은 실물에 자금을 공급하고 발생한 수익을 회수해 재투입한다. 이렇게 창출된 선순환 고리 속에서 실물경제 역시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경제 구조를 인체에 비유하면 심장, 혈관, 혈액과 같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금융이 그 본령에서 벗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금융을 망가뜨린 두 가지 가정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돈은 가장 단기효율적인 활동에 배분돼야 한다는 가정, 금융업자들의 수익성을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이것은 금융의 본령인 자금의 선순환 고리 역할과도 배치된다. 다시 인체에 비유하자면, 심장과 혈관이 신체의 유기적 기능 강화를 위해 작동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만을 위해 작동한 것이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죽게 만든다. 금융은 자기충족적 행위를 하지만 기업과 실물을 죽일 수도 있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빼앗고, 비가 그치면 되레 우산을 제공하는 식의 이기적 행위에 비유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는 '금융과 좋은 사회'라는 글에서 "금융이 제 기능을 다 할 때 생산기술 향상은 물론, 혁신역량 강화, 의학 기술 발전, 기초과학 연구, 공공복지 시스템 구축도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금융기관들의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과 고위 임원들에 대한 고액 보상을 제한하고, 둘째,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다양한 금융서비스와 상품 개발이 필요하며, 셋째, 인간들의 투기성과 변덕스러움을 고려한 금융상품 설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ESG 투자와 금융의 당위성을 주장해 왔다. 이것은 선한 동기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앞서 로버트 쉴러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ESG 금융에 내재하는 '혁신성, 포용성, 투명성'이 한국 경제의 체질과 면역력을 증대시킬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자본의 운행 기제가 개선돼야, 경제도 업그레이드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의 금융은 요지부동, 복지부동이다. 혁신적 포용성장과 동떨어져 자기충족성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은 희소한 자원인 돈을 단기 투자효율 극대화 활동 위주로 배분돼야 한다는 금융자본주의의 상자 속에 갇혀 있다. 돈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이른바 '돈 놓고 돈 먹기'식 프레임에서 나오지 못한다.

투자된 돈은, 돈 이외에도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가치 등 다양한 공공적 가치를 창출하거나 훼손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눈감는다. 그러한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단순히 벌어들이는 돈의 화폐량만으로 투자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여전히 전근대적이다.

돈을 버는 모든 활동이 사회적 환경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투자의 옥석을 가려야 한다. 겉으론 남고, 뒤로 밑질 수도 있고, 제로섬 내지 마이너스섬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돈은 많이 벌지만 사회적 가치가 마이너스인 투자도 있다. 마약, 성매매, 아동노동, 도박, 생태계 훼손, 탄소 과다 배출 등이 그것이다. 취약계층 지원 사업, 사회적 기업처럼 돈은 못 벌지 모르나 사회적 가치가 분명히 플러스인 투자도 있다. 등이다. 또 재생에너지, 탄소 저감 기술, 인공지능, 인재육성, 로보틱스, 바이오 사업처럼 당장은 이익이 나지 않아도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높고 사회적 가치도 플러스인 투자도 있다.

돈도 벌고 사회적 가치도 플러스인 투자로 우리 자본시장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자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단기투기적 성향이 세계에서 가장 짙은 한국 자본시장의 판을 바꿔야 한다.

단기적 관점에서는 긴 안목의 혁신투자가 꽃필 수 없다. 이미 금융선진국에서는 장기투자 관련 주도자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FCLT(Focusing Capital on the Longterm)가 있다. CPPIB같은 글로벌 연기금,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 유니레버 같은 다국적 기업들, 맥킨지 같은 컨설팅회사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장기투자가 기업의 장기적 번영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한국도 공적 연기금들이 장기투자를 선도하고 금융당국은 장기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 등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공적 연기금들이나 정부가 관리하는 기금들의 자산 배분에서 전체자산의 최소 20% 이상은 혁신 투자와 ESG 투자에 배분돼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이는 산업활동의 부가가치 생산성이 빠르게 감소한다는 뜻이다. 반면 금융자산은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 이 축적된 금융 자산이 2%도 안 되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따라다니면 안 된다. 그 대신 그것의 일정 부분을 과감히 떼 내어 벤처 투자 ESG 투자 등 장기 상품에 실어야 한다. 이것이 인구 고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젊은 자금 운용 전략이다.

끝으로 투자 대상을 평가할 때 재무적 성과만을 보는 시대는 지났다.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투자 성과와 위험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UBS가 전 세계 46개국 613개 자산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5년 이내에 ESG 정보가 재무 정보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평가할수록 ESG 우수 기업의 성과가 더 우수하다고도 한다.

금융이 본령에서 벗어나 딴짓을 하면 실물도 덩달아 딴짓을 하기 쉽다. 금융과 자본시장이 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완성할 때 실물시장과 서로 같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이제 한국도 ESG 투자로 자본시장의 새판짜기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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