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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등록 :
2020-04-21 09:39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㊳ 자기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서른여덟 번째 글의 주제는 ‘자기화’다


자기화(自己化) ;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던진 질문

오늘 아침에는 평상시에 가지 않는 다른 산책길로 들어섰다. 집 뒤쪽에 있는 야산野山을 통해 설악면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은 아무도 간본 적이 없는 길이다. 나는 야생동물들이 다닌 흔적을 따라 가거나 혹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찾아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한다. 내가 등산을 막 시작하려는데, 오른 편 가시덤불 가운데 고양이가 한 마리 누어있다. 내가 옆으로 지나도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기 삶의 끝을 인지하고 자신이 돌아온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것 같았다. 몸은 거기에 있지만 혼은 이미 떠나갔다. 숙연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내가 발을 디딜 때마다 낙엽 밟는 소리가 요란하다. 어제 밤 내린 비로 수북이 낙엽으로 덮인 언덕은 미끄럽다. 내는 언덕을 오르려고 위를 쳐다보았다. 나는 상상하지도 못한 생명의 약동을 보았다.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 두터운 낙엽 사이로 무명의 풀잎들이 하늘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곳은 생명의 탄생을 노래하는 풀잎들의 공연장이다. 언덕 전체가 그런 풀잎들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전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풀잎 하나 둘이 모아져 전체가 되는 것이다. 풀잎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르던 길을 멈추고 낙엽을 헤치고 나온 씩씩한 풀잎을 보았다. 얼마나 반듯한지! 저 깊은 땅속에서 줄기를 올린 후, 태양을 향해 양팔을 벌렸다. 좌우가 정확한 대칭은 아니지만 비대칭적 조화를 뽐낸다. 왼쪽 잎에는 작은 물방울들이 송송 오르고 있다. 풀잎은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항상 자신이 변화해야할 모습으로 변한다. 만일 내일도 이런 모습을 간직한다면, 그 풀잎은 죽은 것이다. 자신이 되여만 하고 될 수 있는 모습으로 매 순간 천지개벽한다.

나는 최근에 이 무명의 풀잎만큼 자신만만하고 정직한 생명을 본적이 없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자연의 순환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유일한 의무이자 기쁨이다. 그 풀잎에게 ‘안주’는 존재할 수 없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의 문법은 변화變化다. 내가 올라탄 지구라는 우주선은 자전과 공전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어디론가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에 만족하고 탐닉하는 사람은 시시하다. 그(녀)가 매력이 없는 이유는, 미래에 자신이 건축해야할 자신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뛰고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생기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위해 변화무쌍하게 변화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의 엉뚱함, 신남, 거침없음에 매료된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불길에 태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고 했다. 그래야 인간은 그 불길에서 재가 될 때, 새로운 인간으로 부활한다. 변화하는 인간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살해하고 앞으로 될 자신을 시도하고 연습하는 사람이다. 인류의 현인들은 이 과정을 해탈解脫, 각성覺醒, 회개悔改, 희생犧牲, ‘일치一致’라는 의미를 지닌 아랍어 ‘타우히드’tawhīd, 그노시스gnōsis 등 각 문화전통에서 개념을 만들어냈다.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한 불만을 깨달음으로 과감하게 유기하려는 시도가 희생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그 사람’이다. 그 ‘될 수 있는 그 사람’이 가능이며 희망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 당위이며 의무다.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자신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자신의 노력을 통해 깨닫고, 그것을 위해 매일 매일 수련하여 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을 선택하여 자신으로 만들 때, 행복하다. 고대 그리스어에 이 과정을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 ‘오이케이오시스’oikeiosis다. 이 단어는 ‘집’ 혹은 ‘가족’을 의미하는 ‘오이코스’와 명사형 어미 ‘시스’의 합성어다. 그 축자적인 의미는 ‘어떤 대상을 집이나 가족처럼 편하게 만들다’란 의미다. 에피쿠로스학파 학자들은 이 단어를 쾌락과 연결하여 사용하였다.

그들에게 ‘오이케이오시스’는 자신에게 편한 것을 자기 습관의 일부로 수용하여 탐닉하는 과정이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이 단어의 뉘앙스에 다른 의미를 첨가하였다. 2세기 스토아철학자 히에로클레스Hierocles는 <윤리의 요소들>이란 책에서 모든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자기인식’이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오이케이오시스’는 ‘자기인식’이다. 자기인식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본 자신을 포함한다. 어린아이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된 타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단어를 ‘자기화自己化’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은 가족과 사회를 통해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위를 외부로부터 수용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만든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친지, 공동체, 도시, 더 나아가 세계와 우주까지 자기화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자신을 특수한 개인個人일 뿐만 아니라, 확대되어 도시라는 공동체의 일원인 ‘시민’이며, 더 나아가 ‘우주적인 자아’라고 주장하였다. 이 확장된 자아가 ‘’코스모폴리테스‘kosmopolitês다.

이 단어는 영어의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란 단어의 어원이다. 나는 개인이 아니라 시민이나 세계시민, 더 나아가 우주적인 자아다. 내가 우주적인 자아가 되기 위한 방법이 있다. 친절, 배려, 용서, 사랑과 같은 가치들이다. 하루는 자신이 되어야할 그 무엇을 발견하여 ‘자기 자신으로 만드는’ 자기화의 과정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되어야할 자신이 없으며 타인을 흉내를 내고 부러워한다. 인간은 온전히 자신이 될 때 행복하다.

COVID-19으로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이 시점은 ‘나는 누구인지’ 자문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다. 요즘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족, 동료, 더 나아가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연민과 자비로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자기화’의 과정을 수련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2020년 4월 집근처 야산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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