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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성장 주춧돌 놓은 ‘선경의 유공 인수’

[재계 지형 바꾼 M&A②]SK 성장 주춧돌 놓은 ‘선경의 유공 인수’

등록 2020.03.10 07:47

수정 2020.03.12 17:59

임정혁

  기자

1980년 대한석유공사 인수 ‘선경’ 마침표“선경과 사우디의 오랜 관계가 이룬 성과”“세계 최대 산유국···선경 인수는 사필귀정”

국내 대기업 가운데 인수합병(M&A)으로 가장 큰 성장을 이룩한 그룹은 SK와 한화를 꼽는다. 특히 SK의 경우 성장사에서 M&A를 빼놓을 수 없다. M&A의 성공과 함께 그룹 성장의 역사를 써내려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2위를 목전에 두고 있는 SK그룹 성장을 이끈 3차례의 퀀텀점프는 대한민국 M&A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재계 지형을 바꾼 M&A 시리즈를 통해 과정을 살펴봤다.[편집자주]

SK 성장 주춧돌 놓은 ‘선경의 유공 인수’ 기사의 사진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할 기업은 선경 그룹입니다.”
 
1980년 11월 박봉환 당시 동력자원부 장관이 이렇게 발표하자 기자회견장이 술렁였다. 재계 1~2위 그룹을 제치고 재계 10위권의 선경(현 SK)이 대한석유공사(이하 유공)인수 기업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의외가 아닌 치밀한 계산에 따른 정부의 결정으로 훗날 관계자들의 회고에서 드러났다. 선경과 최종현 선대회장이 오랜 기간 쌓아온 노력과 사우디 왕실과의 관계가 알려지면서다.

선경은 유공 인수 7년 전인 1973년 일본의 이토추 상사, 데이진과 공동 투자로 정유공장 설립을 추진한 바 있다. 선경은 사우디로부터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 공급을 약속받는 등 정유사업 진출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1973년 10월 갑자기 발생한 1차 석유파동으로 이 계획은 무산됐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이유로 한국을 석유 금수국가로 분류했다. 이어 석유 수출량을 50% 삭감하고 나머지도 10개월 안에 중단한다고 통고했다. 이는 한국 경제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난국 타개를 위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 선대회장이 이미 한번 원유공급 확약을 받았을 정도로 사우디 왕실과 두터운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고 있었다. 최 선대회장은 사우디 왕실과 접촉하는 한편 야마니 석유장관을 만났다. 결국 1973년 12월부터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 전량을 사우디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5년 뒤 재차 위기가 찾아왔다. 1978년 12월 제2차 석유파동이 발발한 것이다. 견디지 못한 정부는 1980년 초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원유 도입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석유수급 조절 명령’을 발동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력이 불발로 끝났다. 결국 최종현 선대회장이 다시 한번 사우디로 날아가 돈독한 친분을 갖고 있던 야마니 석유장관에게 하루 5만 배럴의 공급 약속을 받아왔다. 이후 1980년 7월 사우디로부터 첫 원유가 국내에 공급됐다.
 
이런 가운데 유공 지분 50%를 확보하고 있던 미국의 걸프(Gulf)사가 1980년 8월 지분 전체를 매각키로 결정했다. 정부는 1980년 10월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가 내건 조건은 ▲원유의 장기적·안정적 확보 능력 ▲산유국 투자 유치 능력 ▲산유국과 교섭 능력 ▲증설·비축사업을 계획 기간에 완료 가능한 자금조달 능력 ▲경영관리 능력 등이었다. 산유국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며 안정적인 원유 공급선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탓이었다.

이미 사우디 야마니 석유장관으로부터 선경이 정유사업을 하게 되면 필요한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최종현 회장은 자금 조달에서 재차 수완을 발휘했다. 알 사우디 뱅크에 가서 1억 달러의 대부 보증서를 받아온 것이다.

 
결국 정부는 유공 인수의 핵심인 ‘원유 확보 능력’과 ‘자금 조달 능력’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판단한 선경을 인수 주체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안병호 전 수방사령관은 당시 상황을 훗날 회고했다. 그는 신군부 내부에서 유공 민영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가까이서 지켜본 핵심 인물이다.

안 전 사령관은 2010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최종현 회장이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에서 기름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안 줄 것 같아서 문제였지 사우디에서 우리한테 안정적으로 원유를 주겠다고만 하면 사우디가 훨씬 좋은 상대국이었다. 삼성이 선을 댔던 멕시코는 좌파 정권이 잡고 있었다. 선경이 사우디, 삼성이 멕시코에 선을 댄 것이 승패를 좌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최규하 대통령이 직접 사우디를 방문해 최 선대회장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했다. 안 전 사령관은 “유양수 전 사우디 대사한테 들었는데 최 대통령이 ‘한국에는 안정적으로 기름을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확답을 듣고 돌아왔다고 했다. 최종현 회장 말이 맞았던 거다. 이런 상황이면 유공은 당연히 선경이 경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유공 인수 당시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이승윤 전 부총리도 2008년 펴낸 최종현 선대회장 추모서적 <최종현, 그가 있어 행복했다>에서 “이란의 석유 수출 중단을 기폭제로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이는 사실상 ‘정부 대 정부’의 관계로는 석유 수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국도 ‘민간 대 민간’ 베이스로 전환해야 하는 국면을 맞게 됐다. 미리 준비해온 최 회장의 SK가 인수하게 된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유공은 ‘SK이노베이션’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한민국 대표 기업으로 우뚝 섰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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