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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㉘ 보행연습(步行演習)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㉘ 보행연습(步行演習)

등록 2020.01.14 15:37

승화(昇華) ㉘ 보행연습(步行演習)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스물여덟 번째 글의 주제는 ‘보행연습’ 이다

보행연습 ; ‘나는 누구인가’를 찾기 위한 자기숙고

나는 2020년 1월부터 새로운 의례儀禮를 시작하였다. 연말쯤 거룩한 습관으로 정착되기 바라는 행위다. 하루라고 불리는 인생을 뒤돌아보고, 아침 묵상을 통해 계획한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는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그랬는지 복기해보는 반성反省의 의례다. 요즘 일주일에 한번 화요일 새벽에 서울로 강연 행차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내 삶의 반경은 가평 설악면이다. 밤 11시경 30분경, 나는 하얀 방석위에 몸을 정성스럽게 올려놓는다. 새해라는 야속한 시간에서, 13일이란 순간瞬間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지난날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니, 만족스런 날로 있고 그렇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생기는가? 나는 그 차이가 내가 새벽 미명에 행하는 두 가지 의례를 치루는 나의 마음가짐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가지 의례儀禮란, 30분 앉아있기와 2시간 걷기다. 앉아있기는 아침을 여는 초사招詞이고 걷기는 아침에 뜨는 큰 별인 태양을 맞이하는 예배禮拜다. 의례는 언제나 몸과 마음의 정색正色을 요구한다. 의례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ritual 혹은 라틴어 ritus는 오래된 인도-유럽인들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상징하는 개념이다. 고대 인도인들은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를 ‘르타’Ṛta로 고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는 ‘아샤’aša라고 불렀다. 이들은 모두 ‘그 순간에 어울리도록 적당하고 적절하게 연결된 것’이란 뜻이다.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한 라틴어 ‘아르스’ars/art도 마찬가지다. 의례는 하루라는 시간동안 인간이 최선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정성을 모으는 절차다. 나는 좌정과 산책을 하루 안에 처리해야할 일을 위한 준비 단계로만 여겼다. 내가 함부로 이 의례를 해치우면, 그와 비례하여 나는 허접한 하루를 보냈다. 내가 이 의례를 다른 활동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 의례자체를 목적으로 여길 때, 하루를 계획했던 대로 순조롭게 보낼 수 있었다. 좌정과 산책은 하루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하루 자체였고 나의 최선을 요구하는 예술이다.

나는 좌정과 산책을 글쓰기를 위한 워밍업 정도로 폄하해왔다. 앉아있기와 걷기는 글쓰기만큼 중요하다. 오히려 글쓰기는 걷기가 낳은 의도하지 않는 딸이자 축복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1844-1900)는 30대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단순한 독서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니체는 35세가 되던 해인 1879년 심각한 편두통과 만상적인 구토증상으로 바젤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니체는 세상과 동떨어져 허약한 은둔자로 생을 마감할 뻔하였다. 그를 현대를 연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변모시킨 새로운 취미가 있다. 그는 하루에 8시간이상 걷는 은둔자가 되었다. 이 산책은 니체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불멸의 명성을 가져다준 인류의 고전 10권을 저술하는 저력을 마련해주었다. 보행연습은 그에게, 자신의 최선을 서서히 드러내는 신의 선물이 되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장 4단락 ‘몸을 멸시하는 자들에 관하여’Von den Verächtern des Leibes에서 이렇게 말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당신의 생각과 감정 뒤에 막강한 통치자가 서 있습니다.
그는 알려지지 않는 현자입니다. 그의 이름은 ‘자신自身’입니다.
당신의 몸에, 그가 거주합니다. 그는 당신의 몸입니다.
당신이 소유한 최선의 지혜보다 당신의 몸에 더 많은 이성이 존재합니다.
왜 당신의 몸이 당신의 최선의 지혜가 필요한지를 누가 알고 있습니까?”


걷기는 아마도 인간의 움직임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운동이다. 그리고 누구나 어디에서 연습할 수 있는 보편적이며 민주적인 운동이다. 두 발을 앞으로 내 내딛는 행위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족보행을 하는 대부분 동물들은 자신의 발 앞을 보지만 이족보행을 하는 인간은 저 멀리 위치하는 자신의 목표지점에 시선을 둔다. 그 목표지점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과정이며 목표다. 이런 걷기는 근처 가게나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걷기’라는 거룩한 행위만을 위한 의례다. 이 의례는 분단위가 아니라 시간단위로 진행된다.

미국 사상가 소로도 ‘걷기’를 통해, 미국사상의 초석이 된 초월주의超越主義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그의 에세이 ‘걷기’Walking는 그가 죽은 다음 달인 1862년 6월 월간지 The Atlantic Monthly에 게재되었다. 그는 자신이 1851년 4월 매사추세츠 콩코드 라이시움Concord Lyceum에 행한 연설을, 인생을 마감하면서 다시 다듬어 월간지에 실었다. 소로는 들과 산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산책의 혜택을 설명한다. 걷기는 그 어느 장소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나는 누구인가’를 찾기 위한 ‘자기숙고’다. 우리 대부분은 자연에 혼자 있기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타인과 집단을 형성하고 그들과 함께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고 향유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는 <걷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제가 하루에 적어도 4시간을, 사실은 그 이상의 시간을
숲, 언덕, 그리고 들판 사이를 산책하는데 할애하지 않았다면,
저는 저의 건강과 영혼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산책은 모든 세상과 관련된 것들로부터 분리된 완전한 자유입니다.”


걷기는 자신이 지닌 몸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즉 자족自足을 선물한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몸을 부러워하고 찬양하는 사회에서, 고고함과 개성을 가져다주는 것이 ‘산책’이다. 한 사람의 개성은, 그의 몸짓, 특히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몸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려주는 언어다. 눈은 그 사람의 영혼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걸음은 그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며칠 전 202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우연히 보았다. 기억에 남는 배우는 르네 젤위거다. 그녀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맡은 전설적인 배우 ‘주디 갈란드’의 생애를 다룬 영화 <주디>에서 주디 역을 맡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젤위거는 자신의 이름이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되자,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선다. 거의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는 약간 헝클어져 있었다. 어떤 보석도 매달지 않았다. 디자이너 아르마니가 만들어준 하늘색 뷔스티에 옷을 입었다. 그녀가 층계를 올라 관중을 바라보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은, 그녀의 몸가짐, 걸음걸이, 그리고 미소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몸 단련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완성한 인간 같았다. 그녀는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저에게 1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항상 상기시켰습니다.
중요한 것은, 1등을 향한 여정이며 노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침산책은 나에게 여정이자 노력이다. 2020년 이 의례를 종교적으로 행하고 싶다.

<르네 젤위거> 2020년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분 여우주연상 수상장면<르네 젤위거> 2020년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분 여우주연상 수상장면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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