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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등록 :
2019-10-22 15:09

수정 :
2019-10-22 15:09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⑯기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열여섯 번 째 글의 주제는 ‘기준’이다.


기준(基準) ; 나는 섬세한 눈금이 달린 자를 소유하고 있나


나에게는 특별한 독서습관이 있다. 책을 독서대 위해 올려놓고 책상위에 두 가지를 정렬시킨다. 하나는 눈금이 명확하게 그려진 자와, 다른 하나는 모나미 수성 펜 3개다. 자는 투명한 옅은 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15cm길이다. 위아래로 1cm 간격으로 숫자가 적혀있고 그 사이에는 밀리미터를 표시하는 눈금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각 센티 안에서 그 중간을 의미하는 5mm마다 그 끝에 점이 찍혀 있다. 프랑스 학용품 업체인 마페Maped 회사명과 사선으로 그러진 상징이 오른 편에 그려져 있고 왼편에는 Twiʃt’n Flex라고 이 제품의 특징을 적었다. 실제로 이 자는 유연해서 손으로 잡아 틀었을 때 30도 정도 뒤틀려진다. 나는 이 자를 1990년 캠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스퀘어에 위치한 문구점에서 구입하였다. 거의 30년째 나의 독서를 지켜본 훈련사다.

마페 자만큼 내 곁을 지켜주진 않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내 독서를 도와주는 길잡이는 단연 모나미 수성 펜이다. 내가 다른 펜들과 만년필을 사용하며 외도했지만, 언제나 모나미 수성펜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 촉의 부드러움과 간결함에서 나오는 글 모양이 당연 압권이다. 다른 펜들처럼 뚜껑에 걸이가 있어 책상이 저절로 고정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원하면 또르르 굴러 이내 책상 밑으로 떨어진다. 자신을 존경해야 내 곁에 붙어 있는 ‘나의 친구’ ‘몬 아미’mon ami다.

그 책이 시집이던, 소설책이던, 문법책이던, 철학책이던 상관없이 나는 나에게 감동적인 문구가 등장하면 그 밑에 마페 자를 어김없이 갖다 대고 밑줄을 긋는다. 나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문구는 파란 색 펜, 다시 한 번 읽고 곡 씹어야하는 문구는 붉은 색 펜, 그리고 아는 내용이지만 밑줄을 그으면서 다시 되새김하는 문구는 검은 색 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그 문장이 한 문장이면, 마페 눈금을 정확하게 맞추어 긋는다.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바닷물을 보고 ‘이 해안선을 넘지 말아라’라고 말하면서 이런 식으로 표시했을 것이다.

눈금은 인류 문명과 문화의 기준基準이다. 인류는 농업을 발견하고 도시라는 추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면서 상호간의 상거래가 많아졌다. 내가 소출한 농산물의 무게를 재고 상대방이 교환하려는 양의 무게를 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사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눈금달린 자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 기준이 다르거나 없다면, 상거래를 이루어질 수 없다. 기준은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삶의 원칙이다. 그 기준이란, 망망대해를 건너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를 가려고 시도할 때, 내 배에 장착한 엔진이자 방향타다. 이것이 없다면, 나는 그곳에서 영원히 표류하다 인생을 마칠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상거래에 꼭 필요한 세세한 눈금이 달린 자를 만들었다. 중동지방 늪지대에서 자라나는 긴 갈대를 꺾어, 그 마디에 눈금을 새겼다. 이 자를 고대 히브리로 ‘카네’qāneh(קָנֶה)라고 불렀다.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카네는 공동체 삶을 원활하게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카네’가 고대 그리스로 차용되어 고대 그리스어 ‘카논’κανών, 그 후에 라틴어 canōn이 되었다.

캐논은 그리스도교가 등장하여, 수많은 책들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책들을 골라 ‘캐논’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도교의 66권은 그들이 수백년 동안 치열한 논쟁을 거쳐, 시대를 초월하여 읽는 사람의 인생을 전환 시킬 정도로 강력한 ‘경전’으로 확신하고 그것을 고정하였다. 고대 인도인들도 수많은 현인들의 어록 가운데, 특별한 어록들을 별도로 구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나뭇잎에 문구를 기록하고, 그 잎들을 차곡차곡 겹쳐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그 특별한 묶음을 산스크리트어로 ‘수트라’sūtra(सूत्), 팔리어로는 ‘수타’sūtta라고 불렀다. 이 단어들은 ‘실로 엮다’라는 의미를 지는 동사 ‘시브’siv의 과거분사형으로 ‘실로 엮여진 것’이란 의미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중국인들은 이런 책을 한자로 ‘경전’經典이라고 불렀다. ‘경전’은 실로 정성스럽게 엮은 책으로 제사상 위에 올려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란 의미다. 성서, 꾸란, 논어, 도덕경, 금강경, 바가바드기타, 아베스타와 같은 경전들은 그것을 읽고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삶는 자들에게 언제나 영감을 준다.

며칠 전(2019.10.14) 돌아가신 미국 예일 대학교 비평가 헤롤드 블룸Herold Bloom 교수는 서구문명의 핵심은 ‘캐논’에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가 1994년 저술한 The Western Canon에서 현대인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하는 경전 수준의 고전을 소개하였다. 그는 창의성은 인류가 남긴 유산인 ‘경전’을 통해 전달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캐논은 단순한 책이거나, 읽기 힘든 책이 아니라, 삶의 기준이 되는 캄캄한 밤하늘의 등대와 같은 비전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2부에서 셰익스피어, 단테, 초서, 세르반테스, 몽테뉴, 밀턴, 사무엘 존슨, 그리고 괴테를 서구인들의 정신을 다른 차원으로 고양시켜, 삶과 문화의 기준을 마련한 영웅으로 소개한다. 불룸이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Reading well is one of the great pleasures that solitude can afford you.”
“(경전) 독서를 잘 해보십시오. 고독이 당신에게 안겨다 주는 위대한 쾌락이 될 것입니다.”


경전과 캐논은 인간의 삶에도 마페의 자, 눈금과 같은 섬세한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자 기준基準에도 그 심오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첫 글자 基는 바탕을 의미하는 흙토土위에 벼를 까부르는 키 모양과 그것을 놓은 대의 모양을 지닌 기其의 합성글자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내가 의도한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내가 두발을 디딘 이곳의 흙을 퍼서 키나 바구니에 담아 날라야한다.

그것이 삶의 기초 작업이다. 건물을 짓기 위한 터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건물이 견고하게 우뚝 설수 있도록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의 훈련도 시작해야한다. 기준基準의 두 번째 문자 준凖은 물을 의미하는 삼수변氵과 함께 평균을 의미하는 隼준의 합성어다. 이것은 자세한 눈금이 달린 비이커에 조심스럽게 의도한 물을 담아 맞추는 행위다. 隼준은 원래 송골매가 횃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송골매는 가끔 강물이나 호수 위를 일직선으로 비행한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갈매기 조나단과 같이 완벽한 비행을 위한 자기수련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섬세한 눈금이 달린 자를 소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기준으로 하루를 사는가?

<독서하는 소녀> 프랑스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1732년~1806년) 유화, 1770, 81.1 cm × 64.8 cm 워싱턴 국립 미술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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