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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⑮기꺼이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 승화(昇華) ⑮기꺼이

등록 2019.10.15 15:42

 승화(昇華) ⑮기꺼이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열다섯 번 째 글의 주제는 ‘기꺼이’이다.


기꺼이 ; 열망과 희망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거룩한 습관


투자投資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투자는 운運이라는 여신이 나에게 가져올 육체의 쾌락과 편리를 위한 불안한 투자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그런 투자의 귀재를 ‘현자’라고 지켜 세운다. 이 투자는 아무리 조심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행운의 여신이 눈을 감고 부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때문이다. 이 수레바퀴를 영원히 돌리면, 그 운이 통계적으로 언젠가 나에게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운을 기다려줄 만큼 길지 않다.
두 번째 투자는 첫 번 째 투자의 연속으로 인간관계에 투자하는 것이다. 누구와의 관계를 통해 나에게 떨어진 운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 두 가지 투기와는 다른 ‘투자’가 있다. 자신의 행복을 지탱시켜줄 삶의 원칙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원칙은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가 심사숙고하여 정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삶의 원칙에 모든 정성을 ‘기꺼이’ 투자할 때, 그 인간은 변한다. ‘기꺼이’라는 부사에는 삶의 최고우선, 정성, 시간-장소의 투자, 자발, 몰입,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열망과 희망이 섞여있다. ‘기꺼이’에는 나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어떤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싶다는 일종의 강박관념도 숨어있다. 그런 불편은 내가 기꺼이 할 일과 그 결과에 느낄 환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나로 개조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로 ‘기꺼이’에는 고통도 즐거움으로 변한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나의 행위는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억지로 한 행위와 다른 하나는 기꺼이 한 행위다. 억지로 한 행위들은,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니라, 나하고 상관이 없는 주체들이 나에게 강요한 일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내가 감히 질문할 수 없고 도전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군대교육, 그리고 사회교육이라는 말로 내가 아닌 나로 개조시키려고 애썼다. 그 이질적인 가르침들이 내 본성의 동의도 없이 소중한 시절을 장악해 버렸다. 교육은 개인에게 맞춤이어야한다. 인생의 시행착오를 먼저 경험한 부모父母와 선생先生들이 한 개인이 지닌 고유한 소질이 무엇인지 가만히 심사숙고하여, 단점을 제고하고 장점을 연습하라고 정중하게 부탁해야한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암기기계를 양산하는 우리의 교육은, 점점 이기적인 인간을 양산하여 우리사회를 디스토피아로 만들 것이다.

‘기꺼이’라는 단어에는, 그런 태도로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하는 자에게 자존감을 고취시킨다. 자존감이란 오만이나 건방짐과는 다르다, 자신을 1인칭으로 취급하지 않고 자신이 되고 싶은 3인칭으로 여기고, 그런 3인칭이 된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이다. 한 공동체의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자존감을 지닌 자다. 그 사람은 남들에게 명령하고 타인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리더’로서 취해야할 삶의 철학을 습득하여, 그 이상理想에 스스로 승복하는 자다. 리더는 자신에게 리더인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을 누구보다도 존경하기 때문에, 그런 자신에 어울리는 언행을 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이 상상한 이상에 스스로가 적격이 아니라면, 자신을 탄핵하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에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시간을 평상시에 수련하는 자가, 타인 앞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 있다.

‘잘못시인’은 리더의 최고 덕목이다. 다윗은 고대 이스라엘의 왕이며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정복자다. 나단 선지자가 그가 아무도 모르게 자기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일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최고 권력자인 다윗은 나단을 한 순간에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곧 바로 시인하였다. 다윗은 왕으로서 이상적인 통치자로서의 ‘다윗1’과 욕망의 노예가 된 ‘다윗2’을 구별하였다. 다윗2는 다윗1에게 자신의 잘못을 기꺼이 시인하였다. 다윗2는 다윗1이 되려고 수련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승화된 자신을 선정하고, 그런 자신이 되기 위해 일기日記를 썼다. 일기란 매일매일 자신의 언행을 정색을 하고 관찰하고, 새로운 자신을 결심하는 수련장이다. 그는 아우렐리우스1이 되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항상 최선을 시도한다. 그가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시도를 이렇게 묘사한다.

“당신의 행동이, 완벽하게 습관이 된 올바른 원칙에 따라 실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싫증내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실패하면, 다시 그 원칙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이 하는 일이 대부분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을 사랑하십시오.”
<명상록> V.9.1-3

위 구절은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신봉한 스토아 윤리의 핵심이다. 자신이 판단하여 가장 소중한 삶의 행위, 즉 덕이라면, 그것은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누구의 방해와 눈치를 받지 않고 스스로 하는 행위다. 그런 행위는 심지어 행위자에게 쾌락과 기쁨을 준다. 그에게 쾌락은, 에피쿠로스학파의 오감을 자극하는 쾌락이 아니라, 자신이 기꺼이 정한 삶의 원칙을 추구할 때 생기는 벅찬 감정이다.

철학은 그에게 말의 유희가 아니라 삶의 원칙을 지키려는 ‘거룩한 습관’이었다.

“학생이 선생에게 돌아가듯, 철학哲學(φιλοσοφί)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철학은 다음과 같습니다. 눈병이 난 자가 해면과 달걀을, 혹은 다른 환자가 고약이나 습포를 찾으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성에 복종하는 것이, 당신에게 큰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위안의 원천이 됩니다.
<명상록> V.9.4-6


아우렐리우스는 우리에게 철학은 우리의 본성이 원하는 것만을 요구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자신의 본성에 어울리게 사는 것만큼 더 쾌락적이며 매력적인 것은 없다고 기록한다. 그런 후 자신에게 매력적인 것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고매함, 단순함, 자유로움, 배려, 경건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습니다. 현명함 자체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습니다.”
<명상록> V.9.8-9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덕목을 모두 지닌 자가 아니다. 그는 고매高邁함, 단순單純함, 자유自由로움, 배려配慮, 경건敬虔을 삶의 지표로 삶과 이것을 자신의 언행으로 실천하려고 스스로 애쓴 사람이다. 그는 그런 삶이 현명한 삶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덕목들을 언행의 습관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이것들을 즐거움으로 느끼는가? 나는 오늘 하루를 어디에 기꺼이 투자할 것인가?

<세리 마태의 소명> 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미로노프 (1975-) 유화, 2010, 85cm x 70cm 미로노프 개인 소장<세리 마태의 소명> 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미로노프 (1975-) 유화, 2010, 85cm x 70cm 미로노프 개인 소장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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