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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맹상군의 설득법 ; 관점을 공유하라

사람이 설득으로 변할까. 논리로 설복하면 수긍할까. 옳은 말, 논리정연한 말로 공격하면 변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사람들은 남의 말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틀린 말이 아니라 옳은 말 지적이라 더 기분이 상한다는 반응마저 있다. 논리적으로 밀리면 오히려 더 반대를 넘어 적대적 입장에 설 수도 있다.

틀린 말은 무시하지만, 옳은 말에 더 기분나빠하는 이유다.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스스로를 움직여야 변한다. 이른바 설득의 달인들은 언변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상대가 스스로의 맹점을 돌아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었다. 논리는 논점을 강화할 뿐이지만, 질문은 관점을 전환시켜 주기 때문이다. 논리에서 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못본 것을 보아 스스로 마음을 바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득의 달인은 질문을 통한 관점전환을 한 사람들이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유력 정치인인 맹상군도 그런 인물이다. 관점전환의 설득을 통해 본인의 목숨을 구했고, 더 나아가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맹상군은 이름이 전문(田文)인데 제나라 왕족으로는 천하 인재들을 모아 후하게 대접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유력 정치가 전영의 얼자(孽子)였다. 양인 첩의 자식인 서자도 아니고 천민 첩의 자식인 얼자출신이다. 요즘말로 개천의 붕어 가재라 할 만한데 이런 신세 역전에는 관점 전환의 논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제나라의 내로라하는 귀족들 간에는 비인간적 풍속이 있었다. 문자 그대로 전국(戰國)시대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또 그 관계가 하루아침에도 뒤집히는 흉흉한 시절이었다. 귀족들마다 늘 신변에 위험을 느꼈고, 호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호위무사들이었지만 무기를 든 측근이 가장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가 존재했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기골 장대한 여인들을 노비로 거느리고 관계를 맺어 낳은 자식을 호위무사로 쓰는 방법이었다. 맹상군의 아버지 전영은 그 노비들과 관계를 맺어 아들만도 40여명이었다. 맹상군 역시 그런 노비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였다. 문제는 그의 탄생일이었다.

당시 제나라 미신에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집안에 불운을 일으킨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바로 그 날에 전영이 태어났던 것이다. 전영은 얼자인 전문을 버리라고 명했다. 전문의 어머니는 차마 버리지 못해 몰래 길렀다. 나중에 아들이 장성하자 아버지에게 데려가 인사를 시켰다. 전영은 “왜 아들을 안 버렸었느냐”며 노발대발 화를 냈다. 우리나라 홍길동 저리가라는 비정한 상황이었다. 이때 아들 맹상군은 아버지에게 흥분하기보다 냉정하게 다시 물어본다.

"아버지께옵서는 어째서 저를 버리려 하십니까?". 전영이 "속설에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가 문설주만큼 자라면 어버이를 죽인다 해서다"라고 답하자 "사람 목숨은 하늘에서 받은 것입니까, 아니면 문설주에서 받은 것입니까?"라고 반문했다. 아버지가 아무 대답도 못 하자 "사람 목숨이 하늘에서 받은 것이라면 아버지께서는 아무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문설주에서 받은 것이라면 문설주를 높이면 됩니다. 누가 그 높이만큼 커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전영은 아들 문(맹상군)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듣고 보니 옳은 소리요, 딱히 무엇이라 꾸짖을 수 없는 현답이기 때문이다. 그 뒤 전영은 맹상군을 집에 머물게 하였고 결국 얼자인 전문을 후계자로 삼게 된다.

한마디로 “바보야, 문제는 (논점보다) 관점이야”다.

논점과 관점의 차이를 영어로 살피면 한결 이해가 쉽다. 논점은 point, 관점은 point of view다. 논점은 논의나 논쟁의 중심이 되는 문제점이다. 관점은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견해를 규정하는 사고의 기본 출발점을 뜻한다. 우리는 종종 현실에서 논점만 보느라 관점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

갈등의 원인은 관점에 있는데, 논점에 매달려 해결에 도달하지 못한다. 간격을 좁히긴 커녕 간격을 다시 확인만 한다.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고, 우리의 접점을 만들어야 소통을 할 수 있다. 성인은 가르쳐서 변화되지 않고, 깨달아야 변화된다. 깨달을 각(覺)은 볼 견(見)과 배울 학(學)자가 합쳐진 글자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을 봄으로써 배움을 통해 보이게 되는 것이 깨달음이다 살펴야 알 수 있다. 관점을 살피지 않고 논점만으로 다투면 논의는 빗나가고, 협치의 소통은 요원하다.

맹상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맹상군이 아버지의 비정한 논리와 미신만 맹공격을 퍼부어댔다면 그는 바뀌었을까. 만일 맹상군이 아버지 전문에게 5월5일 탄생한 아이가 아버지를 죽인다는 이야기의 논리를 반박했다면, 미신이라며 그런 것을 믿는 아버지를 공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맹상군은 문전에서 쫓겨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단 상대의 관점을 수용했다.

맹상군은 자신을 죽이려는 불안과 문설주 미신 등의 관점을 수용하고 이에 대해 질문의 공을 던진다. 그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가. 논점반박이 아니라 같은 관점에서 해결책을 도모했다. 논점으로 설득하면 백전백패지만, 관점으로 이야기하면 일단 대화의 소지가 마련된다. 또 답을 주면 강요가 되지만 질문을 하면 답의 열쇠를 본인이 쥐게 됨으로써 거부감이 줄어든다. “사람 목숨이 하늘에서 받은 것이라면 아버지께서는 아무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문설주에서 받은 것이라면 문설주를 높이면 됩니다. 누가 그 높이만큼 커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불안을 해소해줬다.

상대의 관점 해독은 환경, 배경이해와 통한다. 관점을 알기 위해선 부분, 표면이 아니라 전체, 이면을 읽어야 한다. 상대편 사람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어떤 배경에서 이 말과 행동을 하게 됐을까. 어떤 면에서 그 말이 진실일까. 관점을 알수록 일도양단의 섣부른 판단실수가 줄어든다. 우리 모두의 접점을 찾으라. ‘바람직함’은 나만의, 너만의 옳은 주장, 최고의 의견이 아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을 수 있는 공동의 관점을 반영한 제안이다. 가치는 같이 해야 빛난다. 원대한 가치의 외바퀴보다 원만한 가치의 두 바퀴가 잘 굴러간다. 너와 내가 같이 할 수 있는 공통의 접점을 찾으라. 바보는 중간이나 평균을 찾지만 천재는 하나를 양보해 둘을 얻어낼 묘수를 구한다. ‘여기가 중심, 포인트’라고 악쓰고 주장해봤자, 입장에 따라 중심과 변두리는 수시로 바뀐다.

관점이 문제인데 논점을 가지고 갑론을박을 벌이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논점 공격의 칼날을 들이대 봤자 서로 상처만 깊어진다. 논점 방어의 방패로 막아본들, 또다른 약점들은 파도파도 나와 끝이 없다. 대국이나 파국을 벗어나 ‘결국’의 해결책에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관점공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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