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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등록 :
2019-09-24 11:10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⑫표류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열두 번 째 글의 주제는 표류漂流다.

표류(漂流); 정치에서 연예까지 애드립에 표류하는 한국號

내가 태어나 보니, 부모와 국가가 정해져 있었다. 가족과 국가는 나의 동의도 없이 나를 규정하여, 자신들의 법으로 나를 충성을 요구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의식을 지니기 시작하면서,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내가 생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모로부터, 헌신과 사랑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배운다. 나는 아프리카나 북극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다. 내가 스스로 이민을 신청하여 다른 국가의 국민으로 귀화하지 않는 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오래전에 제정한 관습과 법률을 따를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은 나를 국민으로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승선한 대한민국이란 커다란 배가 표류漂流하고 있다. 키를 잡은 선장이 가고 싶은 항구가 있어 그 해로로 들어섰다. 선원의 반은, 선장과 동의하여 열심히 노를 저어 그 항구로 가자고 독려한다. 그러나 선원의 반은, 그 항구로 가면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선장의 키를 탈취하여, 배가 더 이상 항해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있다. 어리둥절한 국민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 주는 정치인들의 말만 듣고, 자신의 정치적 편견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고 있다. 배가 태평양 한 가운데서 꼼짝달싹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사방에서 태풍이 불어온다. 북풍, 동풍, 그리고 남풍이 거세게 불어, 우리가 탄 배는 거의 파선 직전이다.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나는 몇 달 째 굳이 몰라도 되는 시시한 것들을 듣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런 잡담으로 스스로를 질식시키고 있다. 이것을 선진국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수준이 낮다. TV를 켜면, 프로그램의 1/4은 상대 진영을 무조건 호통 치는 정치꾼들이 분노에 찬 외침들이다. 1/4은 몇몇 예능인들의 독점무대다. 그들은 여기저기에 등장하여 에드립으로 말장난을 지속하고 있다. 잘생긴 선남선녀들이 동일한 동작을 기계처럼 민망한 포즈를 취하면서 정신없이 춤을 춘다. 국민의 인격과 지적인 능력을 모독한다. 1/2은 시청하는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설교한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물건을 사라고 자꾸 재촉한다. 이런 TV 프로그램들을, 잠시가 아니라 오랫동안 허용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외에 또 존재할까? TV는 국민교육의 장이다. 이런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노출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남들을 흉내 내고 창피를 주고,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의혹을 제기하고 불행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 심리적으로 보상을 받는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유일한 길이 있다. 국민 한 사람 사람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선진적인 인간들이 많아지면, 우리는 자연히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선진국은 선진적인 개인들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선진적인 개인은 자신의 삶을 주도하여, 자신이 흠모하는 삶에 언제나 몰입 되어있다. 그런 개인들은, 자신들을 존경하는 만큼, 타인들도 존경한다. 그런 개인은 타인의 생각과 말을 경청하여, 서로의 지혜를 모아 공동체에 필요한 최선의 대안을 내놓는다.

누가 리더인가? ‘자신에게 리더인 사람’이 리더다. 리더는 자신에게 감동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감동적인 일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에게 3인칭이 되어 자신을 인도引渡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언제나 갈림길위에 서 있어 외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왼쪽으로 갈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갈수도 있다. 아무도 가본적인 없는 길을 선택해야하기 때문에, 그는 언제는 주저한다. 주저와 망설임은 그의 본성이다. 그래서 과학자 아인슈타인처럼, 리더는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통해 왼쪽도 가보고 오른쪽도 가봐야 한다. 이 상상의 과정이 숙고, 명상, 묵상 혹은 기도다. 깊이 자신을 응시하는 습관을 훈련하지 않는 사람은 리더의 자격이 없다. 사고실험의 능력도 없고, 깊이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의 서투른 결정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반드시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만일 리더가 자신을 인도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장님이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가 영웅英雄인가? 그는 침묵의 수련 없이 말하고, 아무렇게나 행동하려는 자신을 바라보고 제어하는 자다. 영웅은 자신을 제어고 정복하는 자다. 스스로 거세하지 않는 욕망은 방종이며 엉망이다. 이 수련이 없다면, 태권도나 권투를 서 너 달 배운 풋내기가 시장판에서 다른 건달에 시비를 걸어 싸움하는 것과 같다. 그는 비참하게 패할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갈고 닦은 욕망, 자신이 흠모할 정도로 변화된 욕망이 포부抱負다. 포부란 자신이 스스로 마련한 칼(刀)로 자신만의 재화(貝)를 만들어 정성스럽게 손(手)으로 감싸는(包) 정성이다. 포부를 지닌 자가 영웅이며, 포부를 지닌 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자다.

이러한 리더는 드물다. 이탈리아 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군주론>에서 그 이유를 선명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외교관, 정치가, 그리고 피렌체 민병대 대장으로 한 시대를 구가한 인물이다. 마키아벨리는 1513년 그를 모함하는 정적들에 의해 기소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풀려난 후, 지긋지긋한 정계를 떠나 글을 쓰기로 작정하여 작가가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과 정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그의 혜안은 정치실패, 모진 고문, 그리고 자신의 고결함을 유지한 인내가 준 선물이다. 그는 오늘 우리가 겪는 혼돈의 이유를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은 다르다. 정치인들의 목적은 권력을 쟁취하고 그것을 유지하는데 있다. 정치인이라는 용어보다 정치꾼이 어울린다. 그들의 언행이 일치할 것이라고 믿는 자는 어리석다. 세상에 언행을 일치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치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이들의 감언이설에 언제나 속을 준비가 되어있다. 인간은 언제나 미래에 일어날 희망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자신들의 희망을 실현시켜줄 것 같은 리더를 뽑는다. 그러나 선출하고 나면, 우리는 그 리더에 실망한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사고실험이나 포부를 수련을 통해 혜안과 겸손을 획득하지 못한 범부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혹은 권모술수를 교묘하여 이용하여 리더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정치에서, 정치가 이래야한다고 바라는 이상理想과 실제 정치가 작동하는 현실現實을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실망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인식하고 그것을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은 그나마 훌륭한 리더다. 자신이 머리 속에 그린 검증되지 않은 이상을,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려한다면, 큰일이다. 그것은 고전히브리어를 1년 배우고, 랍비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어리석음이며 동네에서 싸움으로 이름을 날린 건달이 K-1 무대에서 서는 것과 같은 무식이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군주론>을 책으로 남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을 쓰려는 것이 제 의도입니다.
정치에 대한 상상보다 정치가 실제 작동하는 민낯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본적도 없는 공화국과 군주의 지위를 상상합니다.
그가 사는 방식은 (대다수가 기대하는 대로) 그가 살아야 하는 방식과 너무 다릅니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정치의 목적은 정치인들의 공약, 즉 누구나 행복하고 공정한 사회의 추구, 보편복지의 실현이나 사회평등이 아니다. 이런 슬로건을 건 지도자가 자신의 공약을 얼마간 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소수의 개인들이 공개적으로 혹은 비공개적으로, 법적으로 혹은 불법적으로 대다수 타인들을 장악하려는 권력과 지배력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다. 정치인들 혹은 통치력을 발휘하려는 그 사회의 엘리트들은 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했다는 미국에서 일어난 워터케이트 사건은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한번 쥔 권력을 견고하게 다지고 증강시키고 확대하는 것이 정치의 목표다.

권력을 위한 투쟁에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는 없다. 사회는 언제나 두 부류로 구별이 된다. 지배자支配者와 피지배자被支配者다. 소수의 지배자들은 모든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만끽하지만, 대다수 피지배자들은 지배자들의 정한 법에 따라 행동해야한다. 지배자는 피지배자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지배자들의 목적은 사회를 개선시키는 것이 최우선이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것만이 소수가 대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통치자들의 권력수단을 나열한다. 폭력, 사기, 속임수, 그리고 자신들이 압수한 부의 전략적인 재분배다. 이런 술수가 자신들의 권력을 대다수로부터 인정받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신화, 종교 혹은 미디어를 통해 얄팍한 감정에 호소한다. 통치자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시키고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통치가 필요하다고 확신시킬 여론輿論이 필요하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빗 흄(1711-1776)은 <도덕, 정치, 그리고 문학 에세이>에서 정부 권력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부(권력)의 기반은 여론輿論이다.
이 좌우명은 포악하고 군사적인 정부뿐만 아니라,
가장 자유롭고 모든 국민들이 좋아하는 정부에게도 적용된다.”


위태로운 정권은 여론조사 숫자에 민감하다. 뉴스는 여론조사로 추이로 시작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종교를 이용하여, 소수 지배자들의 통치를 정당하게 만들어 주었다. 왕은 왕좌에 앉고 대다수는 노동하는 이유는 신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신처럼 군림하는 지배자들이 있다. 서양에서는 일찌감치 소수의 지배자들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권력을 제거하였다. 기원전 480년에 일어난 살라미스전쟁은, 페르시아 제국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뭉친 리스 도시국가들의 싸움의 싸움이다. 신정국가인 페르시아 제왕과 평등과 자유를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참전한 개인의 대결이었다. 서양은 이 대결에서 신의 뜻을 대신할 그 무엇을 찾았다. 바로 ‘국민의 뜻’이다. ‘국민의 뜻’이란 애매모호한 기념을 기초한 민주주의가 탄생시켰다. 민주주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한 지배자이며, 우리의 정치인은 우리의 충성스런 대표이자 심부름꾼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 뜻’이라고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책략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접 투표하여 지도자를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낡은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우리가 투표용지에 마련된 사각형 안에 표시한 사람이 리더나 대표자가 되었다고, 그들이 마약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권력을 사리사욕 없이 정의롭게 펼치는가? 소위 ‘민주주의’ 체계 안에서도 통치자는 자신의 최측근들을 국민을 조절하고 길들이는 중요한 권력행사 자리에 앉힌다. ‘족벌주의’는 모든 정권의 특징이다. 우리가 투표한 정치인들이 우리의 이익을 대변할 지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진정한 리더가 되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간이 권력을 잡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권력에 취해, 자신은 선생이고 국민들은 어리석은 어린아이로 취급해 버린다. 권력을 잡은 자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피렌체 시민들이 군주의 본성과 기능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해한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운명을 쥐고 저울질하는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 그리고 북한의 리더들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올 뿐이다. 모두 권력에 눈이 먼, 마키아벨리가 묘사한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꾼들이기 때문이다. 눈을 돌려, 우리의 정치인과 그들에 반응하는 우리의 반응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에 빠진 정치인들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경청하는 수련을 하지 않아, 열린 입으로 정제되지 않는 말을 하루 종일 내뱉는다. 내가 승선한 대한민국이란 배가 넘실대는 태평양 한 가운데서, 이러 저리 표류漂流하고 있다. 우리는 이 험한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는가?

<마키아벨리 초상화>이탈리아 화가 산티 디 티토Santi di Tito (1536–1603) 유화, 104 cm x 85 cm 피렌체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소장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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