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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 기자
등록 :
2019-06-2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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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관계

#친권

#상속

[스토리뉴스 #더]이래도 피가 물보다 진한가요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으면 혈연관계가 된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남녀에게는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양육할 의무가 생긴다. 이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부모’(父母)라고 부른다.

자식이 자라는 동안 각자의 사정에 의해서 혹은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양육의 의무에서 멀어진 사람에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부모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라는 사회적인 이름을 빼더라도 법적으로 남는 것이 있다. 바로 ‘혈연관계’가 그것이다. 법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판단할 때 양육의 의무 이행 여부보다 피가 섞였는지를 우선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법적인 판단은 친권과 상속권에 작용하는데, 자식이 자라 성인이 되고 자신의 가정을 꾸려 역시 부모가 되면 이 기준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친권은 자식이 성인이 되면 무의미해지고, 자식의 재산(자식의 사망보험금 등)에 대한 상속권에 있어서는 자식이 새롭게 만든 혈연관계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흘러가면 자식을 낳았던 부모는 더 이상 법적 판단의 우선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이 자신의 혈연관계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를 낳아준 사람보다 먼저 사망하게 되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성인이 되기 전이나 성인이 됐지만 혼인 전인 경우 사고로 사망해 보험금이 발생하거나, 재산을 남기고 사망하면 상속에 대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때 우리나라의 법은 직계존속에게 최우선 상속권을 주는데 ‘낳았다’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은 따지지 않는다.

자식이 성인이 되기 전 홀로 양육하던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사망한 경우도 마찬가지. 법원은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에도, 남아 있는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권을 낳기만 한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의 희생자 고 신선준 상사. 그를 낳은 권 모 씨는 신 상사가 두 살 때 집을 나간 뒤 28년 만에 나타나 군인사망보상금과 군인보험금 총 1억 5,000만원을 가져갔다.

신 상사를 홀로 키운 아버지가 소송으로 막으려 했지만 법원은 권 씨와 신 상사의 혈연관계에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조정안을 내놓았다. 다만 매달 지급되는 군인연금에 대한 권리의 절반을 가지려던 권 씨의 바람만은 법원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사고로 희생된 고 정범구 병장과 관련해서도 20년 넘게 연락을 끊고 지냈던 생부가 나타나 보상금의 반을 가져갔다. 그것도 다른 가족 몰래 말이다.
2014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때도 마찬가지. 사망한 고 윤체리 양의 생모가 2002년 이혼 후 12년 만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나타나 보상금 절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벌인 바 있다.

2015년에는 음주운전 차량과의 사고로 미성년 아들 삼형제를 남겨두고 사망한 남성의 전 부인이 아이들 몫의 보험금까지 가져가겠다며 권리를 주장했다. 전 남편이 사망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친권자가 본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삼형제는 자신들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생모에게 보험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2016년 친권상실 소송을 제기했다.
상속법에 대한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또다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난 6월 4일 조현병을 앓고 있는 40대 운전자가 일으킨 역주행 사고, 이때 사망한 한 예비신부의 생모가 보험금을 받으려고 30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사망한 예비신부의 언니(실제로는 사촌)라고 밝힌 네티즌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러한 사실을 알리며 법 개정을 촉구했다.

6월 18일에는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의 친권 상실을 요구하는 심판정구서가 제주지방법원에 접수됐다. 고유정이 살해한 전 남편이 갖고 있는 유·무형 자산이 아들에게 상속되는데, 고유정이 가진 아들에 대한 친권을 박탈하기 위한 것이다.

그나마 고유정은 살인, 그것도 피상속인을 죽이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친권이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단지 태어나게 했다는 사실만으로 권리를 챙겨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많은 국민들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의무를 저버린 그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된다.

부모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이익을 취하는 일을 막기 위한 민법 개정안이 3월에 발의됐다. 그러나 국회가 멈춘 까닭에 처리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글·구성 : 이석희 기자 seok@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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