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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글로벌 항공사’로 키우다

[조양호 회장 별세]대한항공 ‘글로벌 항공사’로 키우다

등록 2019.04.08 10:30

이세정

  기자

존재감 약한 국적사에서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도약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위기 극복···올해 50주년 맞아

대한항공 ‘글로벌 항공사’로 키우다 기사의 사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8일 별세했다. 향년 70세.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45년간 ‘수송보국(輸送報國)’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비단 대한항공의 발전만 이끈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은 국내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명망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입사 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 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재직기간 중 국적 항공사로서 미미한 존재감에 그치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몸을 담은 이래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또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결국 대한항공은 결국 위기를 이겨내고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조 회장은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뿐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다.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도 확신했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08년 7월 창립한 진에어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고,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고,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도전과 역경, 성취와 도약의 역사가 담긴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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