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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적 근원

아리랑,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적 근원

등록 2019.02.28 13:41

수정 2019.02.28 13:49

최광호

  기자

수원대 박환 교수, 아리랑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3.1운동 100주년 맞아 재조명 필요성독립운동가 김산 “아리랑은 일본군 3천명을 전멸시킨 독립군들이 모여 부른 노래”

제1차 아리랑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중인 수원대 박환 교수제1차 아리랑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중인 수원대 박환 교수

“아리랑은 일본군 3천명을 전멸시킨 독립군들이 모여 부른 노래이다”- 독립운동가 김산

“과거 조선의용대와 현재 광복군의 깃발이 중국의 여러 전장에서 휘날리고 있다. 아리랑의 노래는 화남에서 화북까지 퍼지고 있다. 중국의 대지 위에는 어느 곳이나 한국의 혁명건아들의 뜨거운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다” - 독립신문 중경판 창간호 창간사 中


수원대 박환 교수는 28일 아리랑박물관 주관으로 강원도 정선 파크로쉬앤웰니스에서 열린 1차 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아리랑의 정신이 깃들어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산을 취재해 저술한 '아리랑'(The Song of Ariran)’에서 김산은 ‘아리랑은 일본군 3천명을 전멸시킨 독립군들이 모여 부른 노래’라고 했는데 실제로 독립운동의 곳곳에 아리랑의 영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아리랑의 영향이 나타나는 몇 가지 사례를 연구해 소개했다. 첫째는 1938년 3·1운동 20주년 기념 공연에서 선보인 조선의용대의 연극 ‘조선의딸’이다. 이 공연은 조선의용대가 1938년 3·1운동 20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린 연극인데, 이때 연극에 앞서 아리랑을 선보였다. 연극의 극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조선민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했는데, 죽더라도 조국의 품안에서 죽겠다는 절규하는 청년들의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

당시 중국에서 발행되던 항일 신문 구망일보(救亡日報)는 1939년 3월 3일 ‘연극 조선의 딸을 보고난 감상’에 “가극 ‘아리랑’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관중석은 금세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아리랑의 선율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고 있는 중국인의 상심을 대신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다. 조선의 민요 ‘아리랑’을 들으면서 마치 조선의 망국을 슬퍼하는 듯한 애잔한 선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중략> 산봉우리에 기대어 죽더라도 ‘조국의 품안에서 죽겠다!’고 절규하는 청년의 격앙된 외침은 조선인은 아리랑 고개를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는 의미를 관중들에게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을 조국과 함께 하겠노라는 조선 민족의 굳은 의지를 표현한 가극 ‘아리랑’은 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소개했다.

또 1939년 조직된 무정부주의 계열 독립운동단체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1940년 5월 중국 서안에서 열흘간 가극 아리랑을 공연했다. 당시 중국 서안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가극 아리랑을 상세히 소개했는데 서북문화일보는 “아리랑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비당하면서도 웅대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극이다. 이번 공연은 한국의 청년작곡가인 한유한(예술구국활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 편극·작곡·연출을 담당했다”고 적었고 이외에도 공상일보, 서경일보 등이 가극 아리랑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공연의 비장함과 웅장함에 대해 호평했다.

박환 교수는 또 “아리랑은 1940년대 전반 독립전사들의 동반자로, 중원대륙에서 이념을 초월해 항일전사들과 함께하는 민족혼이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중경판 창간호 창간사에서 “과거 조선의용대와 현재 광복군의 깃발이 중국의 여러 전장에서 휘날리고 있다. 아리랑의 노래는 화남에서 화북까지 퍼지고 있다. 중국의 대지 위에는 어느 곳이나 한국의 혁명건아들의 뜨거운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만 봐도 아리랑이 독립군의 정서적인 뿌리였다는 점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또 독립신문 중경판, 대한민국 27년 7월 20일자는 ‘현재 화북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청년남녀들은 곳곳에서 ’광복군아리랑‘을 소리높여 부르며 광복군 비밀공작대원에 대한 환영을 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암암리에 공작대원을 정성껏 대접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박환 교수는 “1930~40년대 당시 많은 문헌에서 일제 치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투쟁했던 선열들의 독립운동에 바로 아리랑 정신이 깃들여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과 아리랑의 연관성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최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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