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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34개월···민영화 성공했지만 채용비리에 발목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퇴]영욕의 34개월···민영화 성공했지만 채용비리에 발목

등록 2017.11.02 15:16

수정 2017.11.02 15:21

정백현

  기자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최근 불거진 신입 행원 채용비리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두 번째 임기 시작 6개월여 만인 2일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1957년 충남 천안시에서 태어난 이광구 행장은 천안고등학교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우리은행의 뿌리 중 한 곳인 상업은행에 입행했다.

2003년 우리은행 홍콩지점장으로 발령받은 그는 개인마케팅팀 팀장, 개인영업전략부 부장, 서울 광진·성동 영업본부장,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개인고객본부 부행장을 거쳐 지난 2014년 말 우리은행의 제49대 은행장으로 선임됐다.

이 행장은 최초 선임 당시부터 적지 않은 논란에 휘말렸다. 이 행장이 모교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강금융인회(서금회) 회원이었고 당시만 해도 정부가 우리은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행장의 선임을 두고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서금회는 ‘서강대 출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금융권 요직을 두루 거치며 금융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 행장과 비슷한 시기 금융권에서 급부상했던 사람들이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 등이다.

그러나 이 행장은 안팎의 우려를 좋은 실적으로 극복했다. 지난 2014년 말 1조2140억원이었던 우리은행의 연간 순이익은 2015년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1조2613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지난해 성과를 넘어 1조6000억원대의 순이익 창출이 확정적인 상황이다.

특히 우리은행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민영화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것이 이 행장의 가장 돋보이는 성과였다. 이 행장은 취임 당시 3년이던 임기를 2년으로 줄여 임기 내에 민영화 과제를 완수하겠다고 자신했다.

우리은행은 지분의 일괄 매각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예금보험공사 소유의 은행 지분 51.6%를 여러 명의 투자자에게 쪼개 파는 ‘과점주주’ 방식으로 은행 지분 매각에 나섰다. 결국 7개 투자자에 최소 3.7%에서 최대 6,0%의 비율로 나눠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이광구 행장은 연임에 성공했고 ‘민영화 1호 행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도 함께 달게 됐다.

이처럼 공(功)도 있었지만 과(過)도 있었다. 우리은행의 지주회사 전환을 임기 내에 이루지 못하고 떠나게 된 점은 이 행장 스스로 언급한 과오이자 아쉬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과오로는 출신 은행 간의 파벌 갈등 문제 미해결이 꼽힌다. 우리은행은 1999년 옛 상업은행과 옛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한빛은행(우리은행 전신)이 출범한 이후 2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파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특히 상업은행 출신인 이순우 전 행장에 이어 또 다른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행장이 연임까지 하면서 한일은행 출신 직원들의 불만감이 상당한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신입 행원 부정 채용 청탁 의혹은 결정타로 작용했다. 일각에서는 조직에 불만을 품고 있는 한일은행 출신 전직 임원이 해당 문건을 유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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