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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아 기자
등록 :
2017-08-24 13:37

수정 :
2017-08-29 10:19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조홍제 -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만우(晩愚, 늦고 어리석다)’라는 호를 지어 붙인 효성그룹의 창업주 조홍제 회장. 실제로 조 회장은 일생에서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던 일이 몇 가지 있는데요.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사업가로서의 길을 묵묵히 일구어 냈습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한 조 회장이 신식 학교에 입학한 것은 1922년, 그의 나이 17세가 되어서입니다. 12세에 고등보통학교 입학 자격이 주어지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나이였던 셈. 그렇게 만학도로 학업을 이어가던 조 회장은 1926년 6‧10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돼 입학 4년 만에 퇴학당하고 마는데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학업을 계속하고자 한 그는 한때 졸업장을 위조하기도 했지만, 결국 중학교 입학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졸업이 늦어져도 올바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후 일본으로 떠나 학업을 시작한 조 회장, 30세가 되어서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조 회장이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48년, 그의 나이 43세부터입니다. 삼성상회 이병철 회장의 제안으로 함께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고 부사장에 취임한 것. 제일모직 부사장 등을 거치며 삼성에 머물던 그는 1962년 효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56세 때의 일이지요.

주변의 만류에도 늦은 나이에 효성을 설립한 조 회장은 무역업에서 시작해 제조업으로 차차 영역을 넓혀갑니다. 당시 부실기업이던 조선제분, 한국타이어, 대전피혁을 인수해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은 바도 있습니다.

평소 사회 기여도가 높은 기업을 만들고자 했던 조 회장은 고심 끝에 나일론 사업을 시작합니다. 빨래도 어렵고 잘 떨어지는 무명옷을 나일론 소재로 바꾸면 국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변압기 제조 역시 같은 맥락. 1970년대 우리나라는 전기 인프라가 열악해 단전이 잦고 공급도 불안정했는데요. 조 회장은 보다 질 좋은 변압기를 만들어 국가 전반의 전기 안정성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습니다.

이처럼 사업에 대해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던 그의 선택은 때로 시대를 앞서가기도 했습니다. 1971년 조석래 사장의 발의를 받아들여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조 회장은 상업화 확률이 극히 낮은 분야에도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며 신기술 개발을 추진했는데요. 당시로선 이례적인 일이지만, 이는 훗날 해외 선진 기술의 국내 도입이 어려워진 위기 상황에서 큰 힘이 됐지요.

동양나이론을 중심으로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 등 여러 사업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둔 효성.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국내 5대 그룹으로 성장했고 마침내 조 회장도 성공한 기업가로 우뚝 서게 됩니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도 조급해하지 않고 속도보다 방향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홍제 회장. 그의 신념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것’이라 합리화하는 요즘 세대에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박정아 기자 p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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