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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 기자
등록 :
2017-06-22 14:54

수정 :
2017-08-29 10:28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김종희 - “갈잎이 맛있어도 솔잎만 먹겠소”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왕복 6시간 걸리는 먼 거리에도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던 소년. 일제 치하에서도 나라를 되찾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공부에 매진했던 소년. 바로 한화그룹의 창업자 현암(玄巖) 김종희 회장입니다.

학창시절 김 회장은 한 번 책을 잡으면 끼니도 잊을 정도로 집중력이 높아 성적도 좋았는데요. 성적만큼 의협심도 강해 인기가 많았습니다. 한국 학생들을 핍박하던 일본 럭비부 학생 4명을 단숨에 제압한 것은 유명한 일화.

스무 살 청년이 된 김 회장은 당숙의 소개로 ‘조선화약공판’에 취직을 합니다. 끈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는 채 1년이 지나기 전에 사내 입지를 확고히 하며 상사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지요.

화약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식한 김 회장은 광복 이후 혼란스러워진 ‘조선화약공판’을 수습하면서 운영주체로까지 거듭납니다. 당시 38선 이남 31개 화약고 전체를 관리하게 된 것.

“명예를 얻지 못할지도 모르고 빛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해방된 조국의 화약계를 지키는 등대수가 되겠다.” - 김종희 창업회장

하지만 이내 위기가 찾아오고 마는데요. 총무부의 직원이 회사 창고 안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모조리 빼돌려 도망간 것. 배신한 직원을 따르던 직원들도 모두 떠나 회사엔 10명이 채 되지 않는 직원만 남게 됩니다.

‘조국의 화약계에 이바지 하겠다’는 소신을 가진 김 회장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고 간 다이너마이트 3.7톤이 남아있었기 때문. 미군 공병대 화약 담당 스미스 대위를 직접 찾아가 공급 계약을 따내며 위기를 극복합니다.

미군 화약공판의 정식 관리인 자격까지 얻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 부산까지 피난을 가는 등 다시 위기를 맞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스미스 대위와의 인연으로 김 회장은 미 8군 병참기지의 화약관리를 맡게 됩니다.

전쟁으로 화약 수요가 늘어나던 이즈음, 한 지인이 김 회장에게 달콤한 제안을 합니다.

“남들은 다른 건 수입해 몇 곱을 남기는데 김 사장도 이익이 많이 남는 걸로 한몫 벌어야하지 않겠소?”

소신이 뚜렷했던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만 먹을 거요!”

‘솔잎’에 대한 소신은 더욱 공고해졌지요. 전쟁으로 늘어난 화약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진행된 화약공판 공개입찰,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김 회장이 나선 것. 이로써 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주식회사’가 설립됩니다.

폐허가 된 인천 화약 공장을 복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김 회장. 수소문 끝에 공장 설계도를 찾아내 공장을 복구했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손으로 국내에서 화약을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다이너마이트 생산에도 성공해 외화 절감에 큰 업적을 남긴 김 회장은 이후 기계공업, 석유화학, 식품, 관광 등 사업을 다각화하며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라는 뜻밖의 재난을 만나 일생일대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전 국민의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 김 회장은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사고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지고 다시 맨손으로 돌아가 떳떳하게 새 출발을 하겠다. 이리 사고에 대한 피해 보상을 위해 전 재산을 내놓을 결심이다.” - 김종희 창업회장

진심이 담긴 태도였기 때문일까요? 여론은 조금씩 진정됐고 김 회장은 다시 한 번 경영에 매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어진 뼈를 깎는 노력, 한국화약그룹은 2년 만에 국내 10대 기업과 세계 500대 기업 393위에 오릅니다.

“화약은 진실하다. 화약은 정직한 장소에서 정직한 시간에 폭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화약을 만드는 사람은 화약처럼 진실되고 정직해야만 한다.” - 김종희 창업회장

1981년 59세의 나이로 불꽃같은 생을 마감한 김종희 회장. 그가 위기마다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업(業)에 관한 한 누구보다 뚜렷했던 소신 덕분이 아닐까요?

이석희 기자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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