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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아 기자
등록 :
2017-05-25 14:26

수정 :
2017-08-29 10:42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신격호 - 베르테르의 열정으로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그토록 총명하면서도 그토록 순진하고, 그렇게 꿋꿋하면서도 그같이 마음씨 곱고, 착하고 친절할 뿐 아니라, 정말로 발랄하고…』

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의 입을 빌려 샤롯데를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합니다. 샤롯데를 향한 지고지순한 열정에 베르테르는 끝내 자신의 생명까지 불사르고 마는데요.

소설 속 샤롯데의 매력에 빠진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역시 기업가로서 베르테르 못지않은 열정의 소유자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신 회장은 문인을 꿈꾸는 소년이었는데요.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간 것도 꿈을 위한 선택. 단돈 83엔으로 유학을 시작한 신 회장, 신문배달 등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꿈을 접고 생업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합니다.

성실하게 일한 덕분일까요? 신 회장은 전당포 주인 하나미쓰의 눈에 띕니다. 그는 신 회장에게 6만 엔을 투자, 커팅오일 사업을 권합니다. 하지만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는 미군의 폭격으로 공장이 파괴되면서 시작도 전에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하나미쓰는 이것도 운명이라며 신 회장에게 살길을 따로 찾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 회장은 자신을 믿어준 하나미쓰에게 보답하기 위해 다시 도전합니다. 1946년 ‘히카리(光)특수화학 연구소’를 세워 비누와 포마드 크림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 결과는 대성공, 하나미쓰에게 진 빚에 이자로 집까지 얹어 갚습니다. 두 번의 좌절 후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지요.

“저는 운이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벽돌을 쌓아 올리듯 신용과 의리로 하나하나 이뤄나갈 뿐이죠.”

신 회장은 같은 해 껌 시장에 도전합니다. 보다 좋은 제품을 얻고자 약제사를 고용했고 그렇게 탄생한 껌은 입소문을 시작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모읍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948년 6월 마침내 ‘롯데’를 설립합니다.

일본 껌 시장을 석권한 신 회장은 1961년 초콜릿으로 영역을 확장합니다. 역시 최고의 제품을 위해 스위스 전문 기술자를 고용했고 원료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 마침내 일본의 대표적인 제과 브랜드로 자리 잡지요.

이렇듯 생산하는 제품마다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신 회장의 엄격한 품질제일주의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원료, 기술 등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여 만든 질 좋은 제품을 소비자도 알아봤던 것.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일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나는 1만5천 가지 껌의 특성 및 생산가, 소비자가를 알고 있다.”

신 회장은 제과업계의 성공을 바탕으로 다방면에 진출합니다. 일본 10대 재벌에 꼽힐 정도로 엄청난 부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국 한국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 신 회장의 눈은 어려운 모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1966년 롯데알루미늄, 1967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투자를 본격화하는데요. 한국에서 발생한 수익은 한국에서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웠던 신 회장. 이는 외화가 간절했던 당시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한 순간에는 신 회장의 모국에 대한 애정이 한층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80년대 초 국내 정세가 불안정할 때도 신 회장은 꾸준히 투자를 이어갑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개인재산 2천만 달러를 출자하고 5억 달러의 외자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엔 구경거리가 별로 없어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설을 조국에 남기려는 뜻밖에 없습니다.”

최근엔 신 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했는데요. 관광보국(事業報國)의 뜻에서 시작된 이 꿈은 막대한 비용과 안전성 문제로 30년 간 지연됐지만 2017년 4월 마침내 이뤄지게 됐습니다.

샤롯데를 향한 베르테르의 열정처럼 기업가로서 사람과 제품 그리고 모국에 대한 무한한 열정으로 성공을 일구어낸 신격호 총괄회장. 다만 지나친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 이성과 의지가 조화를 이룬 절제된 열정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정열이 쇠퇴한 기업은 오늘의 난국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경영도 바둑의 세계처럼 조화와 질서 속에서 절제된 정열이 샘솟아 나올 때 필승이 보장될 수 있기에 말이다.”

박정아 기자 p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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