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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 노무현 때문이었을까

[카드뉴스] 정말 다 노무현 때문이었을까

등록 2017.05.19 09:26

수정 2017.05.19 23:58

이성인

  기자

편집자주
우리 앞에 너무 앞서 온 듯했고, 또 너무 앞서 떠나버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과연 온당했을까요? 그에 대한 공과 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은 이 물음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다 노무현 때문이었을까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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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다 노무현 때문이었을까 기사의 사진

“길 가다가 넘어져도, 골프장 가서 오비가 나도 노무현 대통령 탓을 했다. 그 정도로 국민들이 증오를 했다.”

지난 4월 28일 5차 대선 토론 중 홍준표 후보가 한 말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얼마나 못했으면 그 정도였겠냐는 것.

정말 그랬습니다. 풍자처럼 시작해 놀이가 됐고, 나중엔 조롱에 이르렀지요.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빈자는 빈자대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개 노무현 대통령 탓을 했습니다.

언론은 한술 더 떴습니다.

“좌우 언론은 역대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 대통령에게 제왕적 대통령이란 프레임을 사용해 비판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중략) 노무현은 도대체 어느 쪽 칼끝에 맞춰서 춤을 췄어야 하나?”
-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왕따의 정치학』. 위즈덤하우스. 2017.

물론 ‘비판’이나 ‘탓’ 중엔 노 전 대통령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뜻이 왜곡되고 확대·재생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요. 그때 노무현은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당시 우리나라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였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은 했던 시대. 설령 그게 행정부 수반에 대한 조롱만이 목적이었다 해도 말입니다.

이후 들어선 정권들은 이를 깨닫게 해줍니다. 경제 역시 회복은커녕 악화 일로로 치달았지요. 서민들의 지갑은 공기처럼 가벼워졌고, ‘헬조선’이란 자조와 성토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습니다.

결국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고, 국민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조기대선에선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후보를 새 대통령으로 선택했지요. 이를 두고 JTBC ‘썰전’의 유시민 작가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말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압적이고 뻔뻔한 국정농단 관계자 및 관련 정치인을 본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탈한 모습을 그리워하고 이를 문 후보에게 기대했던 건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상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국민과의 소통에 신경 쓰는 모습, 네티즌이나 언론도 대체로 칭찬 일색입니다. 물론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즉각적 조치들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탈권위적인 태도가 ‘가볍다’, ‘대통령답지 않다’란 수식들로 가려졌던, 대통령이 나쁜 모든 것의 원인으로 소환됐던 그때 그 시절과는 일단 다른 양상.

“감시도 하고,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 좀 해주세요.”
-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2002년 12월 연설 中 ‘감시하겠다’는 지지자들에게

이에 대한 응답이, 이제야 도착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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