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공간을 위한 빛의 가장 아름다운 진화 옳은미래 lg의 옳은 미래가 더 궁금하다면 lgfyture.com
이석희 기자
등록 :
2017-05-11 15:40

수정 :
2017-08-29 11:01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구인회 - 신뢰가 성공을 낳는다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의 선구자인 LG. 그 시작은 포목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세계적인 기업 LG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은 연암(蓮庵) 구인회 창업회장입니다.

무라카미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잡화상이 생필품을 독점해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못마땅했던 구 회장. 1929년 사람들을 모아 ‘지수협동조합’을 세우고 비누, 광목, 석유 등을 공동구매해 싼 값에 팔아 성공을 거둡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던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장사. 하지만 가세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는데요. 이에 구 회장은 1931년 부친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동생 구철회와 함께 진주에서 포목상 ‘구인회상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합니다.

“세상을 얕보지 말거라. 남과 화목하게 지내고 신용을 얻는 사람이 돼라.” - 부친 구재서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첫해에는 쌀 100가마니가 넘는 손해만 남겼고, 1936년에는 긴 장마로 인해 상점의 물건이 모두 썩어버린 것.

“장마로 큰비가 내렸으니 올해는 풍년이 올 것이다. 연말에는 돈을 많이 번 농부들이 더 많이 가게에 들를 것이다.”

위기를 맞은 구 회장은 집안의 전답을 팔고 돈을 빌려 더 많은 포목을 사들였고, 그의 예상대로 그해 말에는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후 구 회장은 단순히 포목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취향에 맞는 무늬를 넣어주고 이름을 새겨주는 ‘별색맞춤’ 서비스를 도입하는데요.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그의 전략은 크게 성공합니다.

포목점 성공을 기반으로 청과물, 수산물, 식료품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큰돈을 벌어들인 구 회장이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합니다.

광복 후 부산으로 터전을 옮긴 구 회장은 일본이 버린 화학공장을 사들여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웠습니다. 이때 장인인 허만식의 6촌 허만정에게 자본을 지원받고 그의 아들 허준구에게 영업을 맡기며 손을 잡게 되는데요.

이는 LG와 GS라는 로열패밀리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후 당시 화장품 업계 최고의 기술자로 손꼽히던 흥아화학의 김준환까지 영입하며 화장품을 개발에 뛰어듭니다. 그렇게 시장에 내놓은 ‘럭키크림’은 두 배의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951년에는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해 미국에서 플라스틱 사출성형기를 들여와 빗, 세숫대야 등을 생산합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전시 상황에서 강행한 구 회장의 도전은 한국 화학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플라스틱 사업의 성공으로 힘을 얻은 구 회장은 치약 개발에 나서 한국의 첫 치약인 ‘럭키치약’을 만들어 냅니다. 3년 만에 외국 치약을 밀어내기에 이르지요. 시장을 독점하자 값을 올리자는 제안이 나오지만 구 회장은 호통을 칩니다.

“이윤이 많지 않아도 좋다. 봉사하는 자세를 지키면 럭키의 신용이 소비자에게 남고, 그것이 진실로 돈을 버는 길이 될 것이다.”

플라스틱, 화장품, 치약의 성공으로 사업이 날로 번창하던 1959년, 구 회장은 ‘금성사’를 설립합니다. 국내 최초로 TV, 세탁기, 냉장고 등을 만들며 국내 전자사업을 선도하게 됩니다.

구 회장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일상은 검소 그 자체였는데요. 골목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자가용이나 택시가 아닌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 것은 직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구두쇠라고 부르겠지만 나에게 그건 칭찬이다. 돈 몇 푼 벌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딱하다.”

사업 초기부터 고객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구 회장. 위기와 기회마다 강조했던 것은 신뢰입니다. 그의 믿음대로 신뢰는 신뢰를 낳았고, 이것들이 쌓여 세계적 기업의 자양분이 됐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기업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복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나라의 백년대계에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이석희 기자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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