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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 기자
등록 :
2017-03-23 10:10

수정 :
2017-08-29 11:03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김우중 - 성공은 ‘인연’에서 시작된다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창업 신화’로 잘 알려진 김우중 회장. 하지만 그 출발은 창업이 아닌 ‘취직’이었습니다. 한성실업 김용순 사장이 만든 장학금을 받은 걸 인연으로, 1960년 25세의 나이에 한성실업 무역 담당으로 취업을 한 것.

청년 김우중은 한국 최초로 섬유 분야 직수출을 성사시키는 등 승승장구, 20대 후반에 이사까지 승진합니다. 그럼에도 장래에 대한 걱정은 끊이질 않았는데요.

“내 장래가 걱정됐다. 이리저리 눈치나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형제들이 다 유학 중이었는데 나도 미국에 유학을 가려고 했다.”

그때 하청업체로 연을 맺어온 중소기업 대도섬유의 도재환 사장이 동업을 제안합니다. 이를 받아들인 청년 김우중. ‘대우실업’의 시작이었지요.

‘부장’ 김우중은 대우실업에서도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합니다. 대기업들도 수출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시절에 해외지사를 설립한 것. 이때 그가 가장 중시한 건 현지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었습니다.

“마케팅 전략이다 뭐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이 통해야 된다. 사업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이 하는 거니까.”

대우실업은 섬유원단을 중심으로 품목을 늘리며 초고속 성장, 1978년 대한민국 수출 1위 기업이 됩니다. 이후 전자, 조선, 자동차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다 80년대 대우개발㈜를 흡수합병, 마침내 대우그룹 시대를 열지요.

손꼽히는 자산가가 된 김우중 회장. 이때도 중소기업과의 상생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섬유공장을 보유하고도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고자 국내에 제품을 팔지 않은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수출 쿼터를 많이 갖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 쓰지 않았다. 중소기업이 가격을 낮춰 급히 팔지 않을 수 있게 양보했다.”

그가 성공가도만 달린 건 아닙니다. 1980년 현대양행을 인수해 한국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상화에 야심차게 도전했던 김 회장. 하지만 한전, 현대와의 마찰로 결국 3개월 만에 한국중공업을 포기하고 맙니다. 이를 두고 자신이 없어 버렸다는 비난이 나온 것도 사실.

“원칙적으로 잘하면 흑자 낼 수 있다. 명예가 더 중요하지. 돈이야 언제든지 벌 수 있는데...”

다시 해외사업에 눈을 돌린 김우중 회장은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 데 집중합니다.

“가능성이 보이는 나라 주요 인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괜찮으면 직접 가서 그 나라 대통령도 만나고...”

그러면서 수단, 리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에 섬유, 플랜트, 건설 사업을 진출,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지요. 김 회장은 이들 나라에서 벌어들인 돈을 다시 그 나라에 투자하며 국제적인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돈을 벌어도 다 갖고 가지 말고 절반은 그쪽을 위해 쓰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사업이 커지면 그게 더 이익이니까.”

그가 아프리카에서 이룬 성공신화는 외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요. 리비아와 1980년 국교를 수립한 것도 리비아가 인간 김우중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

김 회장은 대북특사로 활약하며 굳게 닫혀 있던 북한의 문을 여는 데도 큰 역할을 합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다니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있고, 남북관계 개선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김우중’ 하면 떠오르는 ‘세계경영’의 바탕엔 이처럼 ‘신뢰 구축’에 대한 김 회장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동유럽 국가에 진출, 1995년 GM을 제치고 폴란드 자동차회사 FSO를 인수한 건 세계경영의 정점이라 칭할 만하지요.

“GM과 우리는 계산법이 달랐다. GM은 FOS 인원을 80% 줄이려고 했고, 우리는 100% 고용 보장과 투자 확충을 내세웠다.”

이런 철학이 외부 확장에 국한된 건 아닙니다. 1980년대 후반 대우조선 노사분규 때도 힘을 발휘했지요. 직원들과 함께 소통하며 원칙을 재정비하고, 매일 자전거를 탄 채 현장을 돌며 직원들의 마음을 열었던 것.

“직원 요청으로 직원들 집을 돌며 아침을 먹었다. 그랬더니 ‘우리 회장님 보통 재벌과 다르다’고 얘기하고 다니더라.”

이익을 자신의 소유만으로 만들기보단 공존과 공동 성장을 위해 국내외를 뛰어다닌 인간 김우중.

“대기업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을 잘 키워야 대기업도 산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의 세계경영은 1997년 IMF사태 전까지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며 창업의 롤모델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 중심엔 역시 ‘신뢰’에 대한 김 회장의 신념, ‘인연’을 맺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예의가 있었지요.

“적어도 김우중은 열심히 살다 죽은 사람으로만 남아도 내가 보기엔 인생살이 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우중 회장의 남은 꿈은 청년들의 희망과 인연을 맺는 것입니다. 베트남, 미얀마 등에서 글로벌 청년 사업가 육성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그 일환. 그의 세계경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참고 : 신창섭 「김우중과의 대화」, 김우중 「김우중 어록」>

이석희 기자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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