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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등록 2017.03.09 10:34

수정 2017.08.29 11:04

이성인

  기자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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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이병철 - 헛된 세월 같은 건 없다 기사의 사진

일제의 민족말살통치가 극에 달한 1936년. 26세의 청년은 동업자 2명과 정미사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곧 자본금의 2/3에 달하는 손실을 본 청년. 발상을 전환하게 되는데요.

‘군중심리에 따라 쌀값이 오를 때 사고 내릴 때 팔아선 안 되겠다. 거꾸로 시세가 오를 때 팔고 내릴 땐 사보자.’

그때부터 정미소는 이익을 보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수송수단 부족으로 운송에 문제가 생기던 걸 전화위복 삼아 운송사업까지 영역을 넓혔지요. 이 또한 성공을 거둡니다.

두 토끼를 잡은 청년은 토지 매입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은행융자를 받아 출발한 토지투자사업 역시 순조로웠습니다. 1년 후엔 200만 평을 지닌 대지주가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재난은 갑자기 닥쳐오는 법.

1937년 노구교사건과 중일전쟁 발발로 토지 시세가 폭락합니다. 대출은 중단됐고 그간 융자에만 의존해온 토지사업은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지요. 기존 정미소와 운수회사를 모두 처분해 가까스로 부채를 청산한 청년. 수중엔 전답 10만 평과 현금 2만 원만이 남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은행융자에 안주한 채 기고만장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데요.

‘교만한 자 치고 망하지 않은 자 아직 없다.’
‘3리가 있으면 반드시 3해가 있다.’

청년의 이름은 이·병·철. 네, 훗날 삼성 신화를 쓰게 되는 호암(湖巖) 이병철 창업주입니다. 한국경제의 거목으로 불리는 그지만, 첫 사업에선 이처럼 쓴맛을 봤지요.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맛본 이병철 선대 회장은 이때 처음으로 사업에 대한 ‘철학’을 세웁니다.

1. 국내외 정세 변동을 정확하게 통찰할 것
2.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냉철히 판단해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피할 것
3. 제 2, 3선의 대비책을 강구해둘 것

절치부심으로 새 사업을 구상한 이 회장. 자본금 3만원을 들여 중국과 만주를 오가는 무역업을 시작합니다. 1939년엔 조선양주를 인수하기도 했지요. 오늘날 凡삼성그룹의 주춧돌이 된 ‘삼성상회’는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일제강점기 후에도 한국전쟁으로 삼성물산 창고가 약취당하거나,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을 거치며 비료공장 설립이 무산되는 등 위기는 적지 않았습니다. 삼분파동과 부정축재로 세간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타이밍의 사업 확장과 다각화를 통해 위기를 넘긴 삼성. 차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해갑니다.

재계에선 삼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이병철 회장의 ‘원칙’을 꼽습니다. 첫 사업 실패 때 세운 철학을 바탕으로 사업 확장에 관한 확고한 기준을 마련하고, 또 이를 지켰기 때문이란 것.

“언제나 삼성은 새 사업 선택 시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인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 - 이병철 창업주

농촌의 사활과 곡물 증산을 위해 비료공장(한국비료)을 끝끝내 울산에 완공시킨 것이나, 값싼 제품의 대량수출에 의존한 무역이 한계란 판단에 첨단기술로 눈을 돌려 반도체산업을 일으킨 것도 이 원칙에 따른 결과지요.

이처럼 이병철 회장과 삼성은 한국전쟁 전후론 무역을 통한 물자조달의 기능을, 이후엔 수입대체 산업의 부흥을 주도적으로 맡았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가 원조경제에서 자립경제로 전환하는 데 큰 기틀이 됐지요.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게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살리느냐에 있다.” - 이병철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처했던 시대상황과 현재, 물론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간을 소중히 여겼던 이 회장의 자세, ‘쓸모없는 시절’마저 내공 쌓기에 활용한 마음가짐만큼은 (배워도 좋을) 여전히 유효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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