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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왕국의 굴욕’ 日 기업 비극에서 배운다

[아베노믹스의 비극]‘첨단왕국의 굴욕’ 日 기업 비극에서 배운다

등록 2016.04.19 09:30

정백현

  기자

일본 주요 전자기업, 시류 못 읽고 ‘내리막 경영’샤프 경영난에 미적거린 아베노믹스···결국 굴욕이웃 사례 본받아 기업-정부 유기적 활동 나서야

20세기 세계 첨단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의 산업이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첨단 산업의 부흥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노력했으나 약발은 약했다. 산업 부흥을 위한 아베노믹스의 노력은 가상했지만 그 때가 너무 늦었던 탓에 일본 산업이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일본 경제의 이와 같은 비극 앞에 탄탄한 기술력을 앞세워 일본의 빈자리를 채운 우리나라 첨단 산업 업체들은 이웃나라의 굴욕을 통해 뼈있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세기 일본의 첨단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톱클래스 자리를 고수했다. 도시바, 샤프, 산요, 히타치, 미쓰비시, 소니, 파나소닉, 후지쯔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전자 기업은 세계 전자업체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이름을 드높였다.

이 업계에서 후발주자로 꼽혔던 삼성전자도 처음에는 일본 업체의 기술을 배우고 닮아가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1983년 반도체 사업에 처음 진출했을 때 이 사업의 과외 교사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 샤프였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전자 기업의 앞날은 탄탄대로 그 자체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 전자 기업, 나아가 일본의 첨단 산업은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LCD 등 기존 제품에 대한 공급은 지나치게 팽창했고 시장의 흐름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속히 바뀌고 있었으며 시장의 변화는 일본이 ‘기술 후발주자’라고 부르던 우리나라였다. 시류에 어긋난 독자 기술에만 고집하던 중 후발주자에게 추월을 당한 셈이다.

대내외의 악재가 겹친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은 날이 갈수록 추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경상수지는 하락했고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대마불사’로 여겨지던 일본 전자 기업들의 경영에 잇달아 경고등이 켜지는 일이 일어났다.

결국 2000년대 후반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바람이 일본 전자업계를 강타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민·관 합동 구조조정 전문기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2009년 3000억엔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주식회사 산업혁신기구’다.

산업혁신기구는 지난 1999년에 만들어진 산업활력재생법(아베 총리 집권 후 2012년에 산업경쟁력강화법으로 개정)에 근거해 일본 정부와 26개 민간기업이 힘을 합쳐 만든 기구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이 기구를 담당하고 산업구조조정과 벤처 투자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산업혁신기구가 나서서 마련한 구조조정의 대표적 사례는 지난 2012년 탄생한 ‘재팬디스플레이’다.

재팬디스플레이는 글로벌 디스플레이업계 1위 국가인 한국에 대항해 일본 디스플레이업계를 살리고 해당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산업혁신기구가 70%를 출자하고 도시바와 히타치, 소니 등 대표적인 전자 기업 3사가 10%씩 공동 출자해서 탄생한 회사다.

이는 일본 정부가 경제 부흥을 위해 구조조정에 공격적으로 나선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산업혁신기구가 재팬디스플레이 창설 이후의 대기업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기업 간 구조조정이 스스로 이뤄지도록 방관했다는 점에 있다.

그 사이 일본의 전자업계는 또 다시 나락으로 빠졌고 결국 도시바와 샤프 등 주요 업체들의 경영 실적이 다시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자 산업혁신기구가 위기에 빠진 샤프를 살리기 위해 3000억엔을 샤프에 추가 출자하고 2000억엔을 빌려주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하지만 샤프는 일본 정부의 때늦은 지원에도 결국 회생하지 못했고 역대 일본 전자 기업 중 최초로 회사의 경영권이 대만 폭스콘으로 넘어가는 굴욕을 보게 됐다. 한때 첨단산업의 왕국으로 군림했던 일본의 자존심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웃나라 일본 경제의 굴욕적 비극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산업계로서는 여러 가지 배울 점이 많다.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선진 기업들이 하나 둘 경쟁력을 잃어가던 틈을 타 앞선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리도 일본처럼 쓰러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각 기업이 오늘의 기술 우위에만 안주하고 정부도 산업 지원 정책에 미적거릴 경우 턱 밑까지 쫓아온 중화권 기업들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시장 밖 환경은 호의적이지 못하다. 중화권 기업들이 자본과 기술력을 앞세워 추격하고 있고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기업들은 기업가 정신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일본의 부품·소재산업 역시 여전히 건재하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가 스스로 시장을 지속적으로 선도할 수 있도록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활동을 지속하고 정부도 첨단 미래 기술의 원활한 연구와 상용화를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업황 부흥과 기술력 향상을 위해서는 기업의 자발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제때 손을 쓰지 못하면 공멸이 찾아온다”며 “새롭게 국회가 출범하는 만큼 기업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공격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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