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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엄습한 ‘外資 먹튀꾼’ 공포···이번엔 안 된다

또 다시 엄습한 ‘外資 먹튀꾼’ 공포···이번엔 안 된다

등록 2015.06.05 08:55

수정 2015.06.05 08:56

정백현

  기자

美 엘리엇, 삼성물산 지분 인수···합병 간섭 통해 차익 올리려는 ‘수작’ 의도 높아취약한 지배력 탓 SK·KT&G 등 힘없이 당해···삼성물산, 과거 英 자본에 공격 당해무차별 M&A 막으려면 ‘포이즌 필’ 등 제도 도입 급선무···정치권부터 의식 바꿔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경영 참여를 이유로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매입한 가운데 그동안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튀’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엘리엇 측은 지난 3일 1주당 6만3500원에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장내매수를 통해 매입했다. 엘리엇은 이번 지분 매입으로 삼성SDI(지분율 7.18%)에 이어 삼성물산의 2대주주로 등극하게 됐다.

엘리엇의 매수 이후 삼성물산 주가는 폭등했다. 이날 삼성물산 주가는 6만3000원에서 출발해 장중 한 때 주당 7만1000원을 넘어섰고 결국 전날보다 10.32% 오른 6만9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엘리엇은 이를 통해 4일 하루에만 667억원 가량의 시세차익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계 헤지펀드 등 외국 자본의 국내 기업 지분 투자는 합법적이다. 국내 자본시장이 외국인에게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자가 순수한 경영 참여가 아니라 시세 차익을 노리고 경영권에 간섭까지 벌이는 ‘경영 주권 침탈 행위’로 종종 번져 문제가 되고 있다. 엘리엇 측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도 합병 견제를 통해 주가를 부풀린 뒤 ‘먹튀’를 일삼으려는 행각이 아니냐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계와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헤지펀드를 비롯한 외국 자본이 아직도 우리나라 재계를 얕보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않았다고 성토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재계 역사에서 외국 자본에 의해 거액의 국부(國富)가 해외로 유출된 대참사가 여럿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2003년 벌어진 이른바 ‘소버린 사태’다. 뉴질랜드 출신 챈들러 형제가 운영하는 모나코 국적의 자산운용회사 소버린은 자회사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SK㈜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소버린은 총액 1789억원을 투자해 지분율을 14.99%까지 올리며 SK㈜의 2대 주주로 등극했다. 이후 소버린은 당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퇴진과 계열사 청산,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표 대결 결과 극적으로 SK 측이 승리하며 경영권을 지켜냈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SK㈜의 주가가 폭등했고 소버린의 보유 지분 가치도 1조1000억원까지 올랐다. 소버린은 SK㈜의 지분을 팔았고 그 결과 1조원 이상의 차익을 챙겼다. 물론 정부는 이들에게 단 한 푼의 세금도 거두지 못했다.

삼성물산은 영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로부터 수난 당한 바 있다. 헤르메스는 지난 2004년 3월 삼성물산 지분 5%(777만2000주)를 사들인 뒤 무수익 자산인 삼성전자 지분 처분과 삼성카드 증자 불참, 삼성물산 우선주 소각 등을 요구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헤르메스는 외국인 지분율을 46%까지 높이며 삼성 경영진을 괴롭혔고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는 급등했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지분 매입 9개월여 만에 돌연 삼성물산 지분을 전량 처분했다. 결국 헤르메스는 세금 한 푼 없이 차익 380억원을 안고 한국을 떠났다.

KT&G는 지난 2006년 ‘월 가의 포식자’로 불리던 칼 카이칸과 연합 세력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다. 그해 2월 칼 카이칸은 또 다른 헤지펀드인 스틸파트너스 등과 규합해 KT&G 지분 6.59%를 매입했다.

카이칸과 스틸파트너스 연대는 사외이사 1명을 이사회에 심어놓고 자회사 매각 등을 요구하며 KT&G 경영진을 쥐고 흔들었다. 그 사이 다른 사례와 마찬가지로 KT&G의 주식이 크게 뛰었고 수천억원에 달하는 차익이 발생했다.

카이칸은 투자 당시 원금보다 40% 이상 수익을 올리며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안고 2006년 12월 한국을 떴다. 스틸파트너스 역시 2006년부터 2년간 200여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이들 모두 세금은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우리 기업들이 이처럼 외국 자본에 수차례 수난 당한 것은 구조적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순환출자 기반의 지배 형태를 띠다 보니 오너의 지배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 경영 환경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태생적 환경에 한계가 있다면 구조적인 장치, 즉 ‘먹튀 방지책’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것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전경련 등 재계 일각에서는 헤지펀드 등 외국자본의 공격을 막기 위해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 주식이나 황금주 발행 등의 수단이 우리나라에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이즌 필’은 M&A 활동이 활발했던 1980년~199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제도로 한 투자자가 적대적 M&A를 시도할 경우 오너가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 매입 권리를 부여해 M&A를 시도하는 세력이 지분 확보를 어렵게 하는 방식을 갖추고 있다.

더불어 KT&G의 사례처럼 경영권 침탈 의도 세력이 자신의 인사를 이사로 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사진 교체에 필요한 주주 찬성률을 대폭 높여 주총에서 이사 선임안을 통과하기 어렵게 만드는 ‘초다수결의제’ 도입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재계의 목소리에 정치권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는 전경련의 건의에 “검토해보겠다”는 반응에만 그치고 있고 야당과 진보 성향의 경제 시민단체는 “우리 경제의 빗장을 닫고 기존 오너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라며 이들 제도 도입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냉소가 계속 되면 소버린 사태가 또 재현될 수 있다”며 “포이즌 필 등의 제도는 평시에 경영권 안정화를 위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삼고 비상시 M&A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만큼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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